잘 노는 여자
1. 방패로서의 일
회사는 내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패였다.
그거라도 붙들고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나는 이제, 퇴직자로서
일하지 않는 상태로도
살아가야 한다.
2. 가장 두려운 것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료하고 의욕 없는 삶이었다.
하루를 멍하니 보내고 나면
뒤늦게 밀려오는 허탈감과
설명하기 어려운 죄의식.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전체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의욕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상태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는
무의욕의 시간에서
하루는 천 년 같다.
3. 워커홀릭
어릴 때는
‘워커홀릭’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일을 많이 하면 좋은 거 아닌가,
어른의 삶은 일이 중심이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었다.
막상 어른이 되고
일 속에서 살다 보니
그 안에서만
내 존재의 정당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제야
워커홀릭이 왜 병리적인 상태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4. 일이 전부가 되었을 때
일이 삶의 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
그 상태는
가망 없는 관계에 매달리는 사람과 닮아 있었다.
불안했고,
초조했고,
비참했다.
일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나로서 존재하고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5. 일의 기쁨
그럼에도
나는 일을 꽤 사랑했다.
일은 나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를 주었고,
사람을 읽는 기준을 만들어주었으며,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끝없이 시험하게 했다.
프로젝트의 콘셉트를 도출하고
기획서를 수도 없이 고치며
상상력이 풀가동되던 순간들.
수십 년 전의 경험이
갑자기 연결되던 순간들.
그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지기도 했다.
6. 일의 슬픔
문제는
그 기쁨이 점점
다른 삶의 모든 감각을
밀어냈다는 데 있었다.
쉬는 날에도
머릿속은 늘 일의 연장선에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곧바로 불안으로 변했다.
몸은 정직했다.
참아내던 통증은
결국 신호가 되었고,
나는 그제야
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7. 잘 노는 연습
이제 나는
30년의 회사원 생활을 마치고
잘 놀면서도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어도
내 하루는
소박하지만 의미 있고
제법 재미있다.
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와 놀고,
허브 화분을 가꾼다.
좋아하는 책을
음미하듯 읽고 필사한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자막 없이 영어를 듣는다.
손에 딱 맞는 펜으로
종이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필사는
단순한 집중과
지루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으로
나를 데려간다.
1년 쓰던 볼펜을
요즘은 2주에 하나씩 비운다.
키보드에서 나는 소리와 감촉 역시
나의 하루를 깨우는 감각이다.
마치 키보드에 문장이 이미 있는 것처럼,
나는 그저 타이핑만 하는데
문장이 미끄러지듯 만들어질 때가 있다.
그런 감각이 있는 한
삶이 지루해질 일은 없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목표다.
가장 중요한 독자는
언제나 나 자신이다.
8. 일 이후의 삶
요즘 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노는 시간이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똥을 치우는 일조차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진다.
삶이 커다란 농담처럼
느껴지는 날들이다.
9. 남은 시간에 대하여
평생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에서
30년 동안
아둥바둥 밥벌이를 위한 일을 했으면
충분히 했다.
40대에는
커리어적으로 아무 성취도 없는 내 인생을
저주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름을 걸고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보며
혼자 뒤처진 것 같아
잠을 설친 밤도 많았다.
그 감정은
10년 가까이 나를 괴롭혔고,
‘수용’이라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나를 통과했다.
그래,
나는 디자이너로서
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 자신으로서는
최고의 삶을 살아보자.
이제 남은 시간은
놀면서,
아무것도 아닌
그냥 나로서 살아보고 싶다.
어린 시절의 감각을 되살려
하루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