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41. 엉덩이와 브레인 그리고 책상

엉덩이로 가동하는 브레인

by Mira



1. 같은 책상, 다른 브레인


나는 요즘

쇼핑할 때, 투자할 때, 필사할 때마다

브레인의 다른 부위가 가동된다는 걸 분명히 느낀다.


같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작동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마치 같은 몸에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것처럼.


이걸 깨닫고 나서

나는 오래된 오해 하나를 정정하게 됐다.

집중력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2. 쇼핑할 때 켜지는 뇌: 편집


쇼핑을 할 때

내 뇌는 의외로 차분하고 냉철해진다.


질감, 색, 비율,

그리고 이 물건이

10년 이상 나와 함께 할 것인지 생각한다.


사고 싶은 마음보다

버릴 이유가 먼저 떠오른다.

이건 욕망이라기보다

편집에 가깝다.


쓸모없는 건 탈락,

과한 건 보류,

끝까지 남는 것만 통과.

물론 도파민도 팡팡.


이 뇌는

어릴 때 ‘집중력 없다’는 평가를 받던

그 아이다.




3. 투자할 때 켜지는 뇌: 흥분 금지 구역


투자를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 작동한다.


여기서는

느낌이 빠질수록 안전하고

확신이 생길수록 위험하다.


숫자, 시간, 확률.

그리고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이 세계에서는

흥분하면 지고

조용히 버티면 남는다.


이걸 공부로 배운 적은 없다.

다만

버텨본 사람만 아는 감각이다.


전두엽이 풀가동되면 저저로 입이 삐죽 모아진다.

초집중할 때 나오는 표정.



4. 필사할 때 켜지는 뇌: 속도 제한


필사를 할 때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문장이 눈을 지나

손으로 내려오고

몸에 머문다.


생각은 잠시 물러나고

리듬과 호흡이 남는다.

해마가 시원해진다.


이 뇌는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문장을 끝까지 데려오고

맛을 음미하듯

단어의 맛을 느낀다.




5. 문제는 공부


어릴 때 이 모든 건

공부로 인정받지 못했다.


공부는

정해진 자세,

정해진 속도,

정해진 답을 향해 가는 일이었다.


집중력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능력으로 환산되었고

그 기준에서 보면

나는 집중력이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는 이미 여러 방식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그 집중은

시험지에 쓸 수 없었고

성적을 매길 수 없는 것이었다.




6. 공부만 시키면 안전해질 거라는 믿음


공부만 잘하면

인생이 안전해질 거라 믿었다.


성적은 신분증이었고

대학은 보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집중력은

하나의 형태로만 재단되었다.


형식에 맞지 않는 집중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됐다.


그런데 세상에 안전한 직업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7. 엉덩이로 가동하는 브레인


집중력은

지능도, 재능도 아니다.

한 가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힘,

도망치지 않는 근력이다.


어디서 키웠는지는 다르지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써본 사람은

다른 영역에서도 다시 꺼내 쓸 수 있다.


나는 그걸

그림으로 키웠고

회사에서 썼고

지금은

내 일상 곳곳에서 쓰고 있다.



8. 책상에 다시 앉아


퇴직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화장대는 없어도 되지만

나의 생각을 펼쳐 놓을 수 있는 큰 책상이 필요하다.


공부를 해서가 아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다.


집중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뇌는 하나가 아니고

집중력도 하나가 아니다.


그 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아봤다면

많은 아이들이

쓸데없이 자신을 오해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오늘도 앉아 있다.

적어도 엉덩이로 하는 일은 다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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