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듬대로
데일리 루틴
알람 없이 잠들 수 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노 프라블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출근할 때보다 더 일찍 잠에서 깬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아직 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몸을
억지로 깨우지 않아도 되는 아침.
커피를 내리며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만든다.
회사에서 먹던 편의점 샌드위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건강한 아침식사다.
천천히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며 음악을 듣는다.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같은 꽃이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게 어렌지 한다.
꽃과 허브 화분이 가득한 거실에서
느긋하게 잠에서 빠져나오는 이 시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의
어둠과 고요를
오롯이 혼자 누린다.
내 움직임에 잠이 깬
고양이와 강아지와 아침 인사를 나눈다.
뽀뽀를 하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출근할 때처럼
후다닥 나가지 않는 나를
고양이는 아직 낯설어한다.
점심시간
회사에 다닐 때는
배가 고프든 아니든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만에 다시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백수의 점심은
내 배가 고플 때 시작된다.
누구와 먹을지,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소박하지만
단백질과 비타민, 탄수화물이
균형 잡힌 음식이면 충분하다.
한 번에 많이 먹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은 만큼만
천천히 먹어도 된다.
백수의 퇴근
백수의 퇴근은
몸이 먼저 말하는 순간이다.
“이제 그만.”
저녁에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면
그게 퇴근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에도
나는 일상의 경계를
의식적으로 만든다.
집에만 있어도 선크림을 바르고,
저녁에는 공들여 피부 관리를 하고
헤어팩을 한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예뻐 보이고 싶다.
외출
병원에 가는 일 말고는
외출이 거의 없다.
대신 병원에 오고 가는 길에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꽃을 산다.
운이 좋으면 당근도 한다.
당근으로는
주로 바샤 커피와 향초를 산다.
내 감각을 만족시켜 주는
커피와 향초는
포기할 수 없는 사치다.
지금의 나에게는
소소하고도 확실한 즐거움이다.
나의 리듬대로
조직이 정한 타임테이블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리듬으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일상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소속감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도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자유롭고 충만한 기분이다.
다음 커리어를 위해
다시 나를 갈아 넣지 않아도 된다.
머니트리 안에서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이 경제적 안정감이 만들어 준 시간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비로소 얻은 것일까.
행복을 느낄수록
하루를 익절 하는 기분이다.
DUTY FREE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억지로 마주칠 필요도 없다.
어떤 조직이든
어색하고 서걱거리는 관계는
무슨 법칙처럼 꼭 생긴다.
타인에 대한 불편함은
대개 내 안의 콤플렉스를 건드리거나,
욕망을 거스르는 데서 시작된다.
불편한 사람과
의무적으로 인사를 나누던 일상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내일이 기대되는 백수
요즘은
오직 내 몸과 마음을 돌보고
아끼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무리한 스케줄도 없고
기한이 촉박한 일도 없다.
그날그날
쓰고 싶은 만큼만 글을 쓰고,
자고 싶은 만큼 자면 된다.
통 볶듯이 바쁘게 일하고
퇴근해도
늘 헛헛한 마음이
부록처럼 따라오던 때가 있었다.
맥주라도 마셔야
그 기분을 지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설렁설렁 놀 듯이 하루를 보내도
이상하게 뿌듯하고,
내일이 기대된다.
출근이 기다려지는 회사원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내일이 기다려지는 백수가 되었다.
이만하면
아주 성공적인 퇴사 생활이다.
평온이 흔들릴 때
이 평온과 안녕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런 미세한 불안이
가끔 고개를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생기면
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해결되지 않으면
그대로 수용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겪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