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44. Sweet Dream

불면을 건너온 새벽

by Mira



새벽의 고요가 좋아


퇴직하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게 소원이었다.

출근할 때는 아침마다

딱 5분만 더 자고 싶다는 유혹과 싸우며 살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저절로 눈이 떠진다.

새벽에.

늦잠은커녕

몸이 먼저 하루를 시작하자고 한다.


잠이 돌아오자 달라진 것들


불면증을 겪고,

요즘처럼 잠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자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몸의 리듬이 다르다.


세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달라졌다.

자극은 줄고,

정신이 명료하다.



명상 같은 필사


산미가 살짝 감도는 드립커피를 내리고

책상 앞에 앉는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영어책과 노트.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볼펜.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문장을 따라 편안한 호흡이 된다.


필사는 요가와 비슷하다.

자세가 완벽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균형을 찾는 느낌.

회복은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불면의 밤


신경은 늘 곤두서 있었고

의식은 쉬는 법을 잊은 상태였다.

햇빛 아래서

몸이 녹초가 되도록 걸어도

피곤해지기만 할 뿐,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져

날밤을 새우곤 했다.




잠이라는 설계


왜 생명은

잠이라는 장치를 통해 회복하도록 설계되었을까.

하루의 30%를

아무 생산성도 없는 상태로 보낸다니.


휴대폰 충전처럼

20분 만에 회복되고

다시 작동하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컴퓨터는

잠이라는 개념 없이

24시간 풀가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생명은 다르다.

완전히 멈춰야만 회복된다.


어쩌면 잠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

과잉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아닐까.


불면증


불면증은

잠을 못 자는 불편함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과 함께 오면

하루의 리듬이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신경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아주 작은 일에도

크게 동요한다.


딱 5분이라도 좋으니

의식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어둠 속으로

잠시만이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간절함.


아이러니하게도

잠이 돌아온 시점은

중요한 한 가지가

끝났기 때문이다.


퇴직이 확정되고

그 준비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는 안정감.


휴직 중일 때도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쉴 수는 있었지만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시간에 대해

몸에게는 여전히

경계 상태였다.


퇴직이 결정되고 나서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정신과 약을 먹고

캐모마일 티를 마신다.


예전에는

정신과 약에

수면제까지 더하고

술까지 마셔도

잠들지 못했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캐모마일의 뿌리를 통째로

씹어 먹고 싶었다.


몸이 거부한 건

잠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 삶의 구조였을지도 모른다.



정신은

알람보다 먼저

위기의식을 가동했다.


같은 증세를 겪어본 사람에게는

이 글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마 끝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잠을 못 잔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바닥까지 데려가는지,

그리고 그 바닥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잠을 다시 잘 자게 되는 것만으로

인생은

꽤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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