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있는 시간이, 달콤하다
alone
우리는 거의 평생
무언가가 되어야 했다.
대학, 취직, 커리어, 다음 단계.
혼자 있는 시간은
늘 준비되지 않은 상태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은
곧바로 불안으로 이어졌고,
혼자는 자유가 아니라
비참한 낙하에 가까웠다.
혼자 있으면 우울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도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그 안에서 가라앉기만 했다.
그때의 나는 혼자를 견딜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함께해 줄 사람도 없었다.
퇴직 이후
요즘은 혼자서도 바쁘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감각들이
폭죽처럼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리추얼 같은 샤워 시간,
손을 돌보고 셀프 네일을 한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을 만끽 중이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했는데,
지금은 그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인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 사소함이 나를 붙잡아 준다.
취향을 탐험하는 쇼핑 타임
요즘 나는 여행보다
쇼핑이 더 재미있다.
어디론가 떠나기보다
갖고 싶은 물건 앞에
오래 서 있는 시간이 좋다.
날카롭고 차가운
스틸 인테리어가 유행하지만
나는 자꾸 우드 쪽으로 시선이 간다.
완벽하게 정제된 표면보다
결이 살아 있는 재료가 편하다.
티파니처럼
명확하고 단정한 형태의 반지보다
세공사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방 스타일 반지에 끌린다.
기계적으로 균일한 아름다움보다
조금은 불균형한 손맛이 좋다.
예전에는
가격과 필요를 먼저 따졌다면,
지금은
이게 나와 어울리는지,
앞으로 20년, 30년을
함께할 물건인지 생각한다.
반지를 손에 올려보고,
네일 색을 고르며
다시 내려놓는 그 시간 동안
나의 기준을 확인한다.
이건 소비라기보다
편집에 가깝다.
빈티지 가구를 보며
나를 닮았다고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행과 상관없이
지금의 나와 비슷한 물성을 가진 것들.
글과 일에 대한 생각
가끔은 그래도
뭔가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작가로 입문이라도 하면 좋을까
잠깐 고민해 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은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작가라는 타이틀은 근사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나를 다시 조급하게 몰아가기보다,
아무것도 아닌 나로
지내고 싶다.
Date on Me
반지를 고르고,
손을 돌보고,
취향을 정리하는 하루.
혼자 있는 시간이
이제는 견뎌야 할 시간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Date on Me.
혼자 있는 시간이, 달콤해졌다.
역시
IN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