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문제, 투자에 대하여
인생 후반전
마흔이 되자
주변에서는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제2의 커리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공감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늘 막막했다.
겨우 유지하는 회사생활만으로도 벅찬데
또 다른 준비라니?
솔직히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특히 엄마의 조언에는
짜증이 섞이기도 했다.
현상 유지조차 힘든데
고만 좀 볶으시라는 짜증이
튀어나오곤 했다.
몸이 먼저 감지한 위기
하지만 돌이켜보면
누가 먼저 뭐라고 하기 전에
몸이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미래의 위기를
말보다 먼저 감지한 쪽은
항상 몸이었다.
부럽긴 한데,
30대부터 제2의 커리어를 준비해
중년 이후를 안정적으로 살아간다는
사람들의 책도
읽었다.
부럽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막연했다.
나에게는 그런 열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의 커리어조차
겨우 버티는 정도인데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앞에서는
의욕보다 막막함이 먼저 왔다.
‘정년’의 유효기간?
회사 후배들 중에도
지금의 커리어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정년까지 버틴다는 선택을 한다.
다만 지금의 40대에게
‘정년’이라는 단어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돈이 뭘까?
나의 경우
제2의 커리어보다 먼저
돈을 다루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자각이 있었다.
이직을 하든, 직업을 바꾸든
돈을 다루지 못한다면
결국 삶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근로소득의 한계와 인플레이션
근로소득의 한계는 분명했다.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 선택이
투자 리스크보다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인생으로 겪어온 인플레이션 역시
나를 투자세계로 이끈 계기였다.
가만히 있으면
앉아서 돈을 까먹다는 걸 경험했으니까.
생존형 투자
투자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
특히 전문직이 아닌 월급쟁이에게.
.
수험생처럼
돈에 대해 공부하던 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목마름을 견디며
우물을 파는 심정이었다.
물론 그 불안과 후회 덕분에
산수저능아의 뇌가
어쩌다 보니
투자자 모드로 업데이트되었다.
부동산, 가격과 구조
어디 아파트가 오를지를 보는 데서 시작했지만
곧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
소비자의 심리,
아파트 가격과 거주민의 평균 연봉,
학력과 학군까지
구조적인 요소들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가격–연봉–학군의 관계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구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싼 거주지는
대체로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냉정한 현실이다.
언론의 레토릭
부동산을 둘러싼 언론의 레토릭을
정면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월급쟁이가 평생 모아도 못 사는 집’ 같은 기사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월급만으로 집을 사는 구조는 없다.
부동산은
그 자체로 금융상품이고
레버리지를 전제로 작동한다.
몰인정한 집주인과
눈물 흘리는 세입자라는
단순한 갈등 구도 역시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나 역시 세입자였고
집주인이기도 했지만
그런 극단적인 갈등을 겪은 기억은
극소수였다.
집주인 때문에 서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슬로건 보다 구조
인식이 바뀌자
아무 의미 없는 기사와
믿을 수 없는 정치적 슬로건을
구분해 보는 시선도 생겼다.
특히 ‘모두의’, ‘다 같이’, ‘공공의’ 같은
수식어가 붙은 구호를
경계하게 되었다.
따뜻해 보이는 말 뒤에
재원과 구조가 빠져 있다면
그건 휴머니즘이 아니라
포퓰리즘일 뿐.
이 글은
돈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위험해지는 구조를
먼저 알아버린 쪽에 가까웠다.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