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후를 생각하며
가끔은 그 장면을 먼저 떠올려 본다.
해방감일까.
공허함일까.
그리움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아마 하나가 아니라
전부일 것이다.
동시에, 순서 없이.
책임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
나는 부모를 경제적으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노다웃.
하지만 사랑하기는 어렵다.
같이 있으면 5분 만에 화가 난다.
어느 한 번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너무 길고, 너무 많은 불이해가
겹겹이 쌓인 결과다.
그래서 부모가 죽은 뒤
가장 먼저 올 감정이
해방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돌봄의 긴장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속에서 항상 차지하고 있던
무게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공허함은 사랑의 증거가 아니다
그건 부모의 상실보다
삶의 큰 구조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일지 모른다..
해야 할 일,
신경 써야 할 대상,
늘 의식하고 있던 책임의 자리.
그게 통째로 비워지면
텅 빈 기분이겠지.
그리움은 늦게 온다
그리움은
조금 뒤에 찾아올 것 같다.
따뜻한 기억보다는
사소하고 불편했던 장면들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짜증 나게 하던 말투,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하지만 기억한다.
자식의 필요 앞에서는 물불을 기리지 않던
부모라는 존재.
죄책감은 부록처럼
내가 더 잘했어야 했나.
너무 차갑지는 않았나.
이렇게 홀가분해도 되나.
이 감정은
내가 잘못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 관계를 끝낼 때
자동으로 남는 잔여물에 가깝다.
피할 수는 없지만
붙잡고 살 필요도 없다.
그 이후의 시간
부모가 죽은 뒤의 삶은
상실 이후의 공백이라기보다
처음으로 온전히
내 몫이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딸도 아니고,
보호자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은
낯설고, 조용하고,
어쩌면 공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 시간을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다뤄야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전히 남는 질문
해방감,
공허함,
그리움,
죄책감.
그 모든 감정이 지나간 뒤
어떤 내가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