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day
체질적으로는 올빼미형이었다.
하지만 회사원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밤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다.
밤을 새워 일하는 것과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하는 것을
비교해 보니
차이는 명확했다.
퇴직을 한 지금도
몸은 저절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쪽을 선택한다.
밤의 상념과 아침의 사유
밤에 밀려드는 생각은
긍정적인 것보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더 많았다.
반면 아침에는
오늘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더 깊이, 더 실용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출근 시간보다
한두 시간 먼저 회사에 도착해
나만의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에 이룬 수많은 일들이
지금의 나를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켜주고 있다.
월급쟁이의 레버리지
밤의 상념보다는
아침의 사유와 실행을 선택한 것,
돌아보니
그게 가장 잘한 일이었다.
매일 한두 시간을 확보하고 나니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월급쟁이라는 조건을
레버리지로 쓰는 것.
그게 가장 남는 일이었다.
인센티브보다도
훨씬.
새벽의 고요
특히 그 고요함이 좋다.
새벽에 들리는 택배차 소리를 제외하면
내가 틀어 놓은 음악과
노란 조명만이 함께한다.
고양이는 잠에서 깨
아침 인사를 건네고,
강아지는 다정한 몸짓으로 다가와
몸을 비빈다.
출근하던 시절에는
사료만 챙겨주고
총알같이 현관문을 나섰다.
지금은
충분히 만져주고,
안아줄 수 있다.
아침 냄새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
에그 프라이나 오믈렛 정도면
아침으로는 충분하다.
회사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연료처럼 먹던 아침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 아침은 사치가 아니다.
시간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이 시간을 쓸 수 없다고
믿었을 뿐이다.
오후의 자유
중요한 일들을 오전에 마무리하면
하루가 길어진다.
오후는
남겨진 시간이 아니라
비워진 시간이다.
꿀 같은 낮잠을 자도 좋고,
목적 없는 긴 산책을 해도 좋다.
어디에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 걸음은
생각보다 많은 걸
정리해 준다.
해야 할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 위에서
쉬는 시간은
죄책감 없이
제 몫을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성취가 늘어나거나
의지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생각이 조금 더 친절해지고,
몸이 하루를
덜 경계하게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밤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알람을 조금 앞당겨
아무도 부르지 않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시간에는
해야 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먼저 보이고,
하루가
아직 판단받지 않은 상태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까.
셀프 디버깅
퇴직을 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삶을 새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잘 작동해 온 선택들을
조용히 점검하는 일.
고치려는 게 아니라
망치지 않기 위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정말로 가능한지,
그걸
스스로에게 확인해 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