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허브
회사원의 아침
회사원의 아침은
5분만 더 자고 싶은 수면욕과의 사투였고
출근을 위한 전초 작업으로 쓰였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메일과 메신저, 팀장의 호출로
정신없이 속도가 붙었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점심시간.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어 두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퇴직자의 아침
퇴직자의 아침은
럭셔리하고 우아할 수 있다.
잠에서 깨면
몇 시든 상관없이
그냥 책상에 앉는다.
커피가 필터에서 내려지는 걸 기다리며
필사를 시작한다.
오전 2시일 때도 있고
4시일 때도 있다.
출근할 때 새벽에 잠에서 깨는 건
재앙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뜨는 순간
바로 내 시간으로 점프할 수 있다.
고요한 세상에서
홀로 깨어 있다는 감각이
새로운 신경을 자극한다.
작은 스탠드 하나를 켠다.
노란 조명 아래에서
화병의 꽃들이 빛난다.
좋아하는 재즈 연주를 들으며
데이비드 휘트니의 세계로
천천히 유영해 들어간다
꽃과 허브
화병의 물을 갈고
꽃들을 트리밍 한다.
천국은 꽃밭이라고 하지 않나.
나는 내 공간을
꽃과 허브로 가득 채우고
미리 천국을 경험한다.
싱그러운 허브 향과
꽃들을 바라보는 시간.
새벽이 지나 잠시 피곤해지면
그대로 눈을 붙인다.
낮잠이 아니라
아침잠이다.
잠깐 쉬고 나도
아직 오전 9시.
시간을 지키는 이유
이런 시간을 갖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해 왔는지 모른다.
다시 돈 때문에
이 시간을 잃게 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할 듯하다.
무용한 시간
하루의 중요한 일과를 다 마치고 나면
나머지 시간에는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무용하고
목표가 없을수록 더 좋다.
퇴직금이 들어오면
어떻게 운용할지는
이미 시뮬레이션했다.
입금 시점에 다시
집중 모드로 전환해
세팅해 놓으면 된다.
증명하지 않는 삶
제2의 커리어?
또다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백수로서의 나와
잘 지내는 것,
지상 최대의
미션 임파서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