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의미
통제에 대한 감각
회사에는 가끔
‘어린이날’이라고 불리는 날이 있다.
리더들이 긴 회의에 들어가거나
휴가를 낸 날.
그날의 사무실 공기는 가볍고 들떠 있다.
자리를 비우고
티타임을 오래 가져도 되는 여유가
공식적으로 허락되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분위기가 불편했다.
리더가 있든 없든
나는 늘 내 할 일을 하는데.
오히려 그런 반응이
내가 여전히
리더의 존재를 기준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았다.
어른이날
이런 나 자신이
유별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불편했다.
회사에는
리더들에게도 ‘어른이날’이 있다.
임원이 자리에 없는 날.
그날은 리더들 역시
조금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말투가 느슨해지고
회의의 결이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 목줄에 묶여 있는 기분은
실무자만의 것이 아니다.
리더들 역시
각자의 상사에게 연결된 채
통제의 구조 안에 있다.
그래서 ‘어린이날’과 ‘어른이날’은
자유의 날이 아니라
통제가 잠시 느슨해진 날에 더 가까웠다.
적응과 외로움
그런 통제와 위계질서에
심리적 저항이 적은 사람이
조직생활에 잘 적응한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큰 갈등 없이,
무난하게 지낸다.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그 구조에 끊임없이
의문이 생겼고,
불편하고 쉽게 피곤해졌다.
그래서
나는 늘 외로웠다.
그런 내가 부적응자에 무능하게 느껴졌다.
희망퇴직
그런 나에게
희망퇴직은
정말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금 나는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타인에게 통제받는 상태에서 벗어나,
내가 나를 통제하는 상태로 이동하는 중이다.
처음 몇 주는
그 상태가 좋으면서도 낯설었다.
시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서툴어하는 나.
그 낯선 자리에서
루틴을 만들고,
스스로 움직이는 일은
지금도 연습 중.
하지만 이 시간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디그니티를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빈곤 포비아
나는
절대 빈곤에 대한 포비아가 있다.
앞으로 30년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계산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서는 여전히
돈이 없어서
무기력한 나를 만난다.
그 포비아가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다.
돈의 좌표
나는 20대에 이미 겪었다.
돈이 없어서
인생의 주도권을 상실한다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그래서 나에게 돈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돈은
행복의 조건이고,
자유가 작동하는 그라운드다.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자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인물을
상대하지 않다도 되는 자유
원하는 것만 해도
하루가 꽉 차는 충족감.
나는 그 상태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돈은
나에게 늘 구체적이고,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