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Anxiety
불안
불안은 오랫동안 함께해 온 감정이다.
회사원일 때의 불안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엉키는 일정과 예산,
보고와 부정적인 피드백.
퇴직 후에는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원인이 없는 불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집중해서 머리를 풀가동했을 것이다.
플랜 A를 세우고, 대안을 준비하면서.
하지만 요즘의 불안에는
그런 대책이 무의미하다.
원인을 모르니까.
필사를 하고 산책을 하며
낮시간은 그런대로 잘 보낸다.
그런데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불안해진다.
명치에 통증이 느껴지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이 붕붕 뜬다.
하루를 닫는 방법을 잃다
맥주나 와인 한 잔,
영화를 보며 몸을 풀어보려 해도
몸이 알코올을 거부한다.
각성된 뇌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회사 일이든, 투자든
끝까지 나를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온몸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야
기절하듯 잠들 수 있는 리듬.
그 리듬이 멈춘 자리에
안정이나 평화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찾아온 것은
불안이었다.
멈춤을 견디는 일
하나의 일을 마치고
다음 일을 생각해 내기까지의
일시정지 구간을 견디는 게 어렵다.
마치 질주하던 말이
멈추는 법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듯이.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는데.
유일하게 회사원 생활에서
그리운 게 있다면
퇴근 후의 피로감이다.
쉴 수 있는 명분.
단순한 생활
단순한 생활을 시도한다.
먹고 자는 것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관계와 말을 삼간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하루에 한 가지만 집중해 본다.
스스로 정한 일이 마무리되면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한다.
그런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그 자리에
어김없이 불안이 찾아온다.
쉰다는 게 뭘까.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는
어떤 걸까.
머리는 이미지 다른 트랙으로 들어섰는데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아직은 서툰 상태로
퇴직하면
어느 정도의 혼란은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이렇게 깊게
불안해질 줄은 몰랐다.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을 더 키운다.
그래도
서툴고 흔들리면서
결국은 이 불안을
다루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아니니까.
나는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깊이 관찰하고 있는 거다.
자신을 향한 실망이나 분노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꽤 오래 참고 지나온 사람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느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