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 Would Have Been
다행이다
퇴직 후,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돈 때문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력서를
써야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절대 빈곤에 대한 포비아가 있다.
동시에
내 생활은
내 책임이라는 의식도 강하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의 조건에
감사한다.
만약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 오해
우울증이라는 생각보다
게을러서,
못나서,
모자라서라는
자기비판으로
나를 더 몰아붙였다.
의지가 약해서
무너진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정신과 약도,
상담도
모두 싫었다.
왜곡된 사고
투자의 고비도 견디지 못하고,
번아웃 상태를 치유하지 못한 채
더 망가졌을 것이다.
상담을 통해
닥터가 주는 피드백보다
내 상태를 말로 꺼내는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가 조금씩 시작되었다.
• 돈을 벌지 않는 나는 무용하다.
• 죽어도 회사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다니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는
이상한 지점을
맴돌고 있었다.
나의 닥터는
거의 반응이 없고
말로 된 피드백도 없다.
가끔은
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당연히
포기하고 싶은 날도
많았다.
속도를 줄이는 선택
너무 힘들 때는
속도를 줄였다.
전력투구 대신
에너지를 비축하는 쪽을 택했고,
천천히 치료를 받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건지
막막하기도 했다.
치료
투자를 공부한 것도 물론이지만,
근본적인 선택은
정신과를 찾은 일이었다.
4년 전 봄,
그전 겨울을
지독한 우울증으로
간신히 버텨낸 뒤
나는 병원을 찾았다.
길고, 복잡하고,
때로는 지루한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내 정신 건강을
의식적으로 관리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상담
오늘은 마지막 상담 날이다.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사로 인해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처음 병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던
그 장면은,
나를 살린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