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대신 대응을 설계한다
2018년
계열사 이동으로
퇴직금을 수령하거나 이연할 선택지가 생겼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
나는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엑셀을 켰다.
잘 다루지도 못하면서.
숫자를 넣고
지우고
다시 넣었다.
그때의 나는
투자, 인플레이션, 원화 가치 같은 단어를
막 어렴풋이 깨우치던 단계였다.
1억의 가치는 10년 뒤에도 1억일까?
지금 퇴직금을 이연하면
10년 뒤 나는 얼마를 받게 될까?
나는 이 회사에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까?
임금피크제로 연봉이 깎이면
퇴직금은 어떻게 변할까?
2025년
나는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퇴직금과 위로금을 합치니
내가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규모의 돈이 되었다.
일시수령?
IRP로 이연해 연금화?
퇴직 전부터 거의 1년을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엑셀 파일은 몇 개나 만들었는지 모른다.
숫자를 바꾸면 결과도 바뀌었다.
당연한 일인데도, 매번 마음이 출렁였다.
퇴직일로부터 2주쯤 지나
퇴직금이 입금되었다.
기쁨이라기보다는
묵직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컸지만
그 숫자만큼의 확신은 없었다.
월급이 있을 때는
조금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괜찮았다.
생활은 계속 굴러갔다.
월급이라는 자동 보충 장치가 있었으니까.
퇴직 후에는
목돈을 손에 쥐고도
찔끔찔끔 들어오던 월급이 그리워졌다.
통장에 찍힌 숫자에서
0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돈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늘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전하다는 느낌은 줄어들었다.
매달 자동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하나의 0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 0은 숫자라기보다
리듬이었고,
확신이었고,
미래에 대한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목돈은 묵직했지만
월급은 가벼운 숨처럼 규칙적이었다.
퇴직 후의 나는
그 숨을 멈춘 채
큰돈을 들고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움직이면 줄어들 것 같고,
가만히 두면 썩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익률보다 손실을 피하는 데 집착했다.
조금 오르면 불안했고,
조금 떨어져도 불안했다.
시장 예측은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금리는 내가 정할 수 없고,
시장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환율도, 정책도, 경기 사이클도.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안전해지려는 마음을 단정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그 대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정하기로 했다.
얼마를 한 번에 넣지 않을 것.
몇 개월에 나누어 들어갈 것.
어떤 비율을 기본으로 둘 것.
하락이 오면 어떻게 반응할 것.
예측 대신 대응.
감정 대신 구조.
매월 1일,
같은 날에,
같은 비율로.
시장이 -15%를 넘기면
그때는 조금 더 기회를 본다.
그저
시장에서 오래 버티는 구조를 만든다.
통장에 찍힌 숫자에서
0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 들던 날로부터,
나는
숫자에 매달리는 사람에서
숫자를 다루는 사람으로
조금은 이동한 것 같다.
퇴직금을 대하는 자세
통장에 찍힌 숫자에서
0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 들던 날,
나는 돈의 크기보다
내 마음의 크기를 먼저 보았다.
퇴직금은 보상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버틸 것인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가.
처음에는
이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다음에는
이 돈을 불리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퇴직금을 대하는 자세는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
예측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공포에 쫓기지 않고,
정해 둔 날에,
정해 둔 비율로,
정해 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
퇴직금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마법의 씨앗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지탱해 줄 연료다.
연료는 한 번에 태우지 않는다.
천천히, 오래,
그리고 계획적으로 사용한다.
나는 이제
퇴직금을 붙잡고 있지 않다.
그 위에 구조를 얹어두었을 뿐이다.
예측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응은 설계할 수 있다.
그 차이를 알게 된 것이,
내가 퇴직금으로 얻은
가장 큰 수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