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305.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워지는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 사이

by Mira




명함이 있던 시절


인간의 불행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와

실제 자기 사이의 간극만큼 무거워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명함이 그 간극을 메워주었다.


어디에 속해 있는지,

무엇을 맡고 있는지,

어떤 조직에 있는지.


그 설명이 곧 나를 대신하던 시절의 안도감이 있었다.


퇴직을 하고 나니

나는 누구지?

회사라는 시스템이 없으면

나는 무엇으로 설명되는 사람이지?




나를 설명하지 않기


동네 강아지 산책 알바 면접을 봤다.

퇴직해서 수영과 마사지 말고는

딱히 매여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를 말하면

상대가 나를 조금 더 낫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말하지 않았다.


그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다녔는지가 아니라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지,

개를 안정적으로 다루는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지였다.


태도와 성실함,

말의 톤과 책임감.


그건 온전히 나에게서 풍겨 나오는 바이브지,

전 직장 이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버티기의 위험


모호한 디렉션과

엉뚱한 피드백은 월급쟁이의 멘탈을 털어간다.


그럴 때는

그럭저럭 일하는 척하면서

버티기도 했다.


이 일을 하나 저 일을 하나

월급은 같았다.

자기 효능감이 깎여도

월급은 나온다.


그런데 그 길은

월급쟁이에게 가장 위험하다.


적당히 일하면서 버티는 태도가

몸에 익어버리면

애매한 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희망퇴직에 대한 계산은 단순했다.


정년까지 5년을 더 버텨서 벌 수 있는 돈과

지금 받을 수 있는 퇴직금과 시간.


정년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다.

임금피크제도 있다.

조건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희망사항


나는 5년 후,

60세가 된 내가

“그때 희망퇴직하길 잘했다”

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4년 전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현재형으로 늙기


나는 요즘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내 모습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글을 쓴다.


까마득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리는 삶은

전반전에 많이 했다.


후반전까지

그 방식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나는 활자로 생각이 정리되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영화를 보고

“재밌다”로 끝나는 뇌가 아니라

왜 재밌는지 묻는 뇌.


질문이 생기면

답을 해야 한다.

글로.


나는 한때의 경력으로

자기를 지탱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현재의 나와 함께 나이 들고 싶다.


회사 이름 없이도

하루를 정돈하며 살아내는 사람.


아직 뒤뚱거리고 첨벙거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다.


그리고 꽤 만족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간극이

조금씩 줄어드는 감각.


지금의 안도감은

거기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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