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304. 아직은 30분이면 충분하다

넷플릭스는 못 끊지

by Mira




퇴직자는 지위가 없다.

명함도, 직함도, 소속감도 없다.


그래서 가끔 무방비 상태가 된 것 같은

불안이 찾아온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성취한 지위는 곧 존재의 가치로 번역된다.

어디에 다니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버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인간인가.


이 속도전에서 뒤처지면 무엇이 박탈될까.

돈일까, 기회일까.

아니면 존중일까.



머스크의 어드바이스


일론 머스크는 넷플릭스를 끊고

그 시간에 논문 한 편이라도 더 보라고 말한다.

AI 시대에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계속 배우고,

계속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문명이 발전하면

인간은 조금쯤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이제는 문명의 속도까지

따라잡아야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기차가 등장했을 때

인간은 기차보다 빨라지려 하지 않았다.

대신 기차를 타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어떤가.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읽고 계산한다고 해서

인간이 열등해지는 걸까.




스위밍 풀


수영을 시작한 첫 주에는

물속에서 20분만 허둥대도

밖으로 나오자마자 실신하듯이 뻗어버렸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꺼풀에 잠이 쏟아졌다.


며칠을 반복하자

5분 정도는 더 물속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몸은 느낀다.


하지만 뇌는 계산을 시작한다.


30분은 채워야 하지 않나.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나.

이 정도로는 아깝지 않나.


몸은 만족을 말하고

뇌는 효율을 말한다.





현대 사회는

몸의 감각보다 뇌의 계산을 더 신뢰하도록 훈련해 온 건 아닐까.


조금 더.

조금만 더.

이왕이면 최대치.


그 계산 속에서

‘충분하다’는 감각은 쉽게 밀려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선택하는 것.

몸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때

그 신호를 존중하는 것.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퇴직 이후

나는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지를 묻기보다

얼마나 나로 살 수 있을지를 묻는다.


뒤처지는 것이 두려운 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문명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속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하루 30분의 수영

아직은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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