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uld, should, could
나이가 들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어릴 때는 죽음이 사건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하나의 가능성처럼 느껴진다.
많은 선배들의 노년에서
미래의 내 모습을 본다.
질병도, 사고도, 쇠약도
내 선택과 무관하게 다가온다.
수명이 길어졌다고 말하지만
그 시간이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시간’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보다
살아 있는 동안
나로 살지 못할까 봐 두렵다.
후회가 두렵다.
더 나이가 들어
“그때는 할 수 있었는데”
라고 말하게 될까 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세계 여행도,
높은 산을 오르는 일도 아니다.
다만
하루를 내가 선택하는 감각.
누군가 정해준 시간표가 아니라
내가 고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하루.
그것은 오래된 로망이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지금은 책임이 있으니까.
몸이 피곤하니까.
변명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다른 질문이 있었다.
나는 정말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
자유가 두려워서
타인의 구조 뒤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퇴직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기보다
숨을 곳을 없앴다.
이제는
핑계가 없다.
남은 시간의 길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선명하게 만든다.
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운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멋진 인생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를 묻기보다
얼마나 나로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