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ll direction, everyday
퇴직 후의 시간
퇴직 후 몇 달은
밤도 낮도 없이 잠만 자거나
술만 마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도
그러려니 하기로 했었다.
일정도 책임도 없어진 시간.
나라는 사람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나도 궁금했다.
루틴을 만들다
하지만 막상 나는
초반 두 달 동안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데
꽤 힘을 쏟았다.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대신
집을 청소하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중심으로
하루를 구성했다.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집을 정리한다.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채우는 생활.
세 달째인 지금
그 루틴은
꽤 잘 작동하고 있다.
수영을 마치고 돌아와
버터를 듬뿍 바른 식빵을 굽는다.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햄과 치즈 두 장,
루꼴라를 한 움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든다.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따른다.
생활은 단순하다.
하지만
방향이 생긴 기분이다.
몸을 움직인다
몸의 컨디션이 유지되면
생각은
저절로 따라온다.
수영할 때도 비슷하다.
숨을 쉬려고
첨벙거리며 버둥댈수록
물만 더 많이 먹게 된다.
힘을 빼고
몇 초만 가만히 있으면
몸은 저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가벼운 몸짓으로도
앞으로 쑥 나아간다.
몸이 편안해지면서
물이 나를 데리고 가는 느낌.
인간은 왜 길을 찾을까
인간은
제자리에서 백 번 뛰는 것과
어떤 목표를 향해
백 번 뛰어갔다 오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평안하게 받아들일까.
아마 대부분은
두 번째일 것이다.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안도한다.
그 길 끝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상상하면서
태양도
바람도
견딘다.
하지만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아무 상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기분을
몹시 힘들어한다.
요즘의 생활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하루의 작은 방향을 만든다.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집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
요즘 내 생활은
잘 정돈된 자유를
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