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307. 하루로 충분하다

불안은 디폴트

by Mira



불안이라는 기본 값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내 육신은 재가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인생에서 아까운 것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돌보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




불안은 늘 있다.


퇴직하기 전에도 있었고

퇴직한 지금도 있다.


자산을 계산해 보면

대략 어느 정도의 숫자가 나오지만

그 숫자가 불안을 지워 주지는 않는다.


불안은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디폴트다.

순간마다,

다른 아젠다를 들고 나올 뿐이다.


어느 날은 돈,

어느 날은 건강,

어느 날은 미래.


불안은 늘 같은 자리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




중도하차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트랙에서

내려온 사람일까.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길.


많은 사람들이

큰 질문 없이 올라타는 트랙.

나도 꽤 오랫동안

그 위에 있었다.


그 트랙에서

중간에 내려온 기분이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안정적으로

30대와 40대를 지나왔다.


그리고 그 시간은

퇴직을 좀 앞 당겨도 크게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부자들의 숫자에 비하면

작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에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에 감사한다.





새로운 트랙


트랙에서 내려온 뒤

한동안은 불안했다.


방향이 사라진 기분.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는

트랙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트랙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런 단위는

아직 조금 버겁다.


그래서 나는

하루 단위로 살아보기로 했다.


몸을 움직이고

집을 정리하고

햇빛을 느끼고

음악을 듣는다.




충분한 하루


돈으로 계산해 보면

내 하루는

그리 비싼 생활이 아니다.


커피 한 잔

간단한 식사

산책

음악.


하지만 그것들로

하루는 충분히 채워진다.


어쩌면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불안이 아니라

방향이 없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조금 안심한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은

기본값이다.


그래도

하루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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