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서
아주 오랜만에 모교에 다녀왔다.
골목마다
스무 살의 꿈과 기대,
그리고 좌절이 배어 있는 곳.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긴 했다.
기억이라기보다,
어딘가 낯선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
전생의 기억처럼
까마득하다.
그때의 내가
정말 있었나 싶을 만큼
⸻
지옥의 계단
매주 수요일,
채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숨이 차도록 뛰어오르던 그 계단.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그 시간은
스스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니까.
⸻
젊음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리스 비극 같았던 연애,
지금 보면
혼자 찍은
시트콤에 가깝다.
관객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
취업전선
졸업식 날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의 나에게는
졸업이라는 세리머니도
사치였다.
취업의 문을 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들고
이 회사, 저 회사를 찾아다니던 시간.
지금의 나는
퇴직을 하고
고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기억한다.
면접장 앞에서
기다리며 서 있던
그때의 초조함.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하던
그 멍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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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되지 않는 것들
젊은 날의 거창하고 근거 없는 꿈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던 희망들.
나는 그 사이에서
자주 나를 몰아붙였다.
그때의 유일한 위로는
나이 들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저절로 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시간을 통과했다.
죽을힘을 다해.
어떤 일은
운이 따랐고,
어떤 일은
그렇지 않았다.
⸻
30년 후
스무 살에는
그 이후의 세상이 어떤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모하고, 황당한 꿈들.
그걸 믿을 수 있었던 건
젊음의 특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충분히 누렸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아는 나이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이제는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세상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아버렸다.
그때는 열광하던 것들이
이제는 낯설다.
그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에
몰입하기도 한다.
⸻
같은 공간, 다른 시간
교정에서 마주치는
앳된 얼굴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지나온 시간과
얼마나 다를까.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살고,
나는
내 시간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