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322. 시간을 통과한 후에

모교에서

by Mira



아주 오랜만에 모교에 다녀왔다.



골목마다

스무 살의 꿈과 기대,

그리고 좌절이 배어 있는 곳.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긴 했다.

기억이라기보다,

어딘가 낯선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


전생의 기억처럼

까마득하다.


그때의 내가

정말 있었나 싶을 만큼



지옥의 계단


매주 수요일,

채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숨이 차도록 뛰어오르던 그 계단.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그 시간은

스스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니까.



젊음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리스 비극 같았던 연애,

지금 보면

혼자 찍은

시트콤에 가깝다.


관객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취업전선


졸업식 날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의 나에게는

졸업이라는 세리머니도

사치였다.


취업의 문을 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들고

이 회사, 저 회사를 찾아다니던 시간.


지금의 나는

퇴직을 하고

고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기억한다.


면접장 앞에서

기다리며 서 있던

그때의 초조함.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하던

그 멍한 순간.



저절로 되지 않는 것들


젊은 날의 거창하고 근거 없는 꿈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던 희망들.


나는 그 사이에서

자주 나를 몰아붙였다.


그때의 유일한 위로는

나이 들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저절로 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시간을 통과했다.


죽을힘을 다해.


어떤 일은

운이 따랐고,


어떤 일은

그렇지 않았다.



30년 후


스무 살에는

그 이후의 세상이 어떤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모하고, 황당한 꿈들.

그걸 믿을 수 있었던 건

젊음의 특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충분히 누렸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아는 나이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이제는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세상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아버렸다.


그때는 열광하던 것들이

이제는 낯설다.


그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에

몰입하기도 한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교정에서 마주치는

앳된 얼굴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지나온 시간과

얼마나 다를까.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살고,

나는

내 시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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