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Ash, the First Green
번아웃은 무기력으로도 나타났다.
그리고 꿈에서도 재현되었다.
누군지 모를 상대나 포악한 동물에게 쫓기고,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려 진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려 골목골목을 헤매고,
회사 위치를 기억하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하려 해도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아 궁지에 몰렸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죄책감에 조마조마하는 장면도 반복됐다.
서스펜스와 스릴이 넘치는 꿈을 매일 꾸었다.
나중에는 ‘오늘은 무슨 꿈을 꾸려나?’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마치 나의 무의식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런 꿈에서 날아다니고, 뛰어다니고, 떨어지고, 꺼지고 난리를 치다가 출근해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그 조용한 분위기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끔은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여기 앉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도 속으로는 나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아니면 보이는 대로 편안할까?’*
나만 아는, 가공되지 않은 나의 밑바닥에서
나를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은 나의 결핍을 드러냈다.
‘아, 나는 이게 잘 안 되는 사람이구나.’
현실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고,
나의 한계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다.
20·30대에 막연하게 기대했던 것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40대의 나를 바라보며 서글펐다.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나.
밉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미래는 더 초라할 것 같아 불안했다.
40대에 경제적 토대가 없다는 건
20·30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불안이었다.
그런데, 월급쟁이 생활을 계속했는데도 왜 경제적으로 곤란했을까?
스트레스로 인한 온갖 질병이
30대부터 내 몸을 잠식했다.
디스크와 현기증이 주된 증세였지만
원인도 명확하지 않았다.
돈 먹는 하마 같은 질병 때문에
월급의 대부분을 병원에 갖다 바쳤다.
보험이 있었냐고?
비급여로 받는 치료가 훨씬 많았다.
40대가 되어 주변을 보니
한참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후배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착착 쌓아가고 있었다.
경제적 자유, 부자로 은퇴하는 법.
월급에 매여 사는 나에겐 신기루 같은 이야기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마치 입시생처럼, 절박했다.
아침 7시면 회사에 도착해 경제뉴스를 읽고,
경제 팟캐스트를 들으며, 노트에 필사를 했다
“환율이 이런 거였어?”
“대출이 이런 거였어?”
“인플레이션이 이런 거였어?”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글씨로 쓰고
보면서 모르는 건 검색하고,
다시 내 언어로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마치 세상의 한쪽만 바라보다가
다른 쪽에도 눈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소비습관을 점검하고,
부동산·주식·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일을 반복했다.
5~6년이 지나자,
나의 뇌가 월급쟁이의 그것에서
투자자의 뇌로 ’ 트랜스포밍‘되는 걸 느꼈다.
*‘번아웃과 월급 같은 머니트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번아웃을 겪는 동안,
고통 속에서 나를 응시했고
아주 느리게, 천천히
나를 수용하는 마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비로소
’이대로는 안 된다.‘
는 자각이 찾아왔다.
그건 단순히
*‘돈을 아끼자’*
*‘미래를 준비하자’*
와 같은 결심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결심이었으면
아마 3개월도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심이 오래가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억을 모으자.’가 아니라
‘돈이 성장하는 나무’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