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쇼팽과 고양이

The Second Life Tree

by Mira

40대 초반부터 나는

‘조기퇴직’에 대한 불안을 달고 살았다.

회사에서 별 존재감도 없고, 일도 재미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재취업은 불가능할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며칠 전, 50대 조기퇴직자들의 구직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중년의 얼굴들이 면접장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이력서를 고쳐 쓰고 있었다.

표정에는 긴장과 피로, 그리고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그러데 내가 사람을 고용하는 입장이어도,

일을 새로 가르치기 애매한 40~50대보다는 30대를 선호할 것 같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나이는 삶의 이정표다.

그 나이, 나이 마다 반드시 해 놓으면 좋은 게 있다. 투자 공부도 마찬가지, 40대 중반이 마지노선이라고 본다. 뇌가 투자자의 머리로 바뀌는 게 결코 쉽지 않다.


25년 상반기에 회사에서 30~40대 후배들이 너나 할거 없이 미용기기를 사더라.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런 생각만 잠시 했지, 그 회사의 주식은 찾아보지 않았다. 상반기 실적 발표가 되자마자 그 회사 주식은 날아갔다. 나, 뭐 한 거니?

주변의 인간지표기 그렇게 확실한 신호를 주었는데!


하지만 내가 뭘 놓친 건지 알고 절치부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과 내가 뭘 놓친지도 모르고 멀뚱하게 사는 것. 그런 시간이 10년, 20년이 될수록 분명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더라.


재취업을 한다고 한들,

그곳에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재취업을 아무리 잘해도 분명히 정년은 다가올 거라서,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재취업이나 자격증보다는

제2의 월급을 만들 수 있는 ‘머니트리’에 집중했다.

노후에도 자동적으로 투자하고 소득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게 나의 생존 계획이자 은퇴 플랜이다.


40대 초반까지 나도

돈은 ‘고용된 형태의 노동’을 통해서만 버는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득은 ‘자본’과 노동이 풀가동될 때 더 가열차게 성장한다.


회사가 내 노동을 사주는 동안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있었지만,

그 기반이 사라지면 소득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자본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구조가 필요했다. 월급만 믿고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말하는 ‘머니트리’다.

퇴직 이후에도 나 대신 일해주는,

작아도 꾸준히 열매를 맺는 나무.


게다가 ‘평생직장’이라니?

그런 건 이제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누구라도 고용형태는 변할 수 있고 나만의 ‘무엇’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래도 인생의 한 챕터쯤은 내 일을 하면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와

‘내가 정말 좋아서 몰입할 수 있는 일‘

을 찾는데 집중했다.


이 과정은 대학입시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의 심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박했다.

그땐 잘못 골라도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실패가 곧 생활의 붕괴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심플한 투자 시스템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는 ‘적립식 투자’가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동산은 2018년에 세팅하고 약간의 월세 소득을 만들고 있다.

월세와 매도를 통해 얻는 수익은 자동으로 미국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로 이어진다.


이렇게 하면 월세라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자본이 성장하는 자산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

노동 소득이 끊겨도 자본이 일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것이다.


내가 잘 때도 시스템은 매일 미국 주식을 사고 비트코인을 산다.

밤새워 앱을 들여다보는 일도 없다.

3~6개월에 한 번씩 수익률을 보고 약간의 리밸런싱을 할 뿐이다.


배당금 역시 다시 배당주를 사는 시스템이라서

별로 신경 쓸 것도, 시간을 쓸 것도 없다.


관심 있는 종목이나 섹터가 생기면

AI를 통해 투자 분석과 가상 포트폴리오로 점검한다.

단, AI가 추천한다고 해서 무조건 믿지는 않는다.

내가 이해가 되어야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투자도 인생도 심플한 게 나에게는 제일 잘 맞더라.

거기에는 스릴도 없고 서스펜스도 없다.

대단한 무용담도 없다.


미국 주식은 이제 끝이다.

기술주 거품도 이제는 끝이다.

S&P500의 신화도 이제 끝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끝이다’ 돌림노래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도 시장이 급락할 때 쫄아서

더 매수하지 못한 기회가 많다.

그럴 때는 매도하지 않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래서 투자는 ‘간’ 사이즈만큼 하는 거다,

라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내 배짱을 초과하는 일을 하면,

내 몸과 멘탈이 먼저 초토화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게, 자산이 1억 도 안될 때나 그 몇 배가 된 지금이나 ‘지출’에 대한 감각과 총금액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박한 생활과 지속적인 투자만 이어갈 뿐이다.


퇴직 후 시나리오

퇴직 후의 시나리오는 A부터 Z까지 세우고 시뮬레이션해본다.


평생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좀 다른 데서 살아보면 어떨까?


두 번째 인생에 대해서는

공간에 대한 생각도 열려 있고, 유연하다.

어디서 살든, 어떻게 살든

내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자금과 구조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홈이 될 수 있다.


나는 무조건 생활비가 500만 원은 있어야 한다…

는 것도 아니다.

그 이상이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나는 ‘재미있게’ 살 자신이 생겼다.


머니트리가 무성해서만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도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게 무엇인지 알아서 생긴 자신감이다.


친구가 없어도,

돈이 없어도,

사회적인 타이틀이 없어도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그림 그리기다.


그리고 하루 종일 쇼팽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어떤 날은 아리아만 듣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신나는 EDM을 들어도 시간이 잘 간다.


서랍을 정리하거나,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다.

기존 옷을 다 꺼내놓고

새로운 스타일링을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고양이와 뒹굴거리면서

함께 고양이 영상을 보는 건 극락의 체험이지.

세상에 고양이가 있는 한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74. Just Be Your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