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ule My Mother Taught Me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엄마도 같은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으셨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꽃샘추위로 아이들 코가 빨갰던 3월, 교정에서 입학식이 열렸다.
엄마는 나에게 빨간 재킷과 주름치마, 노란 스타킹을 신기고 가슴에는 하얀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아 주셨다.
사진 속 나는 추위와 긴장에 굳은 표정, 동네 미장원에서 말아준 촌스러운 곱슬머리였다.
입학식 날,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운동장 뒤에 서 있었지만, 우리 엄마만 교단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네이비 슈트에 하얀 장갑, 운동화를 신고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치던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활기차고 건강한 엄마의 장면이다.
종이쪽지 사건
2학년이 되던 해, 담임 선생님의 사정으로 엄마가 우리 반 1일 담임을 맡았다.
그때 반에서 유행하던 건 ‘리얼 종이쪽지’였다.
내용은 대부분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요” 같은 소문이었고,
가끔은 “나 너 좋아해” 같은 대범한 고백도 있었다.
쪽지가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책상 위를 떠돌면, 보낸 아이는 수업이고 뭐고 애가 탔다.
그날, 쪽지가 엄마 손에 딱 걸렸다.
호랑이처럼 단단한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할 말이 있으면 얼굴 보고 해라.”
다른 선생님들이야 그냥 쪽지를 압수하는 걸로 끝냈지만, 엄마는 ‘왜’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 가르침은 이상하게도 평생 내 안에 남았다.
메신저 시대의 깨달음
2000년대 초,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메신저와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거, 쪽지 돌리던 거랑 똑같네.”
메신저 창에서 오가는 짧은 말들이 오해를 키우는 걸 수도 없이 봤다.
한 번은 내가 “하아~”라고 답했다가, 리더가 “한숨 쉬는 거냐”며 감정이 격해진 적이 있다.
바로 찾아가 오해를 풀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앙금이 남았을 것이다.
업무상 실수, 책임 공방, 유관부서 갈등…
이런 건 메신저나 이메일로 해결되는 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본질은 사라지고 ‘무례한 사람’이라는 인상만 남는다.
내가 지키는 원칙
그래서 나는 감정이 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절대 문자로 하지 않는다.
오해의 여지가 있으면 “잠깐 시간 되세요?”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흥분이 남아 있어도 물 한 잔 건네며 대화하는 편이, 키보드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특히 공식적인 관계에서는 이 원칙을 더 지킨다.
감정이 격해져 거친 표현이 나올 것 같으면 차라리 침묵한다.
종이쪽지가 루머의 씨앗이 되듯, 문자는 캡처 한 장으로 오래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쪽지에서 메신저로,
종이는 화면으로 바뀌었지만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말은 눈빛과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해야 한다.
그래야 오해나 곡해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방지할 수 있다.
문자가 만드는 오해와 감정 손상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5%쯤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