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렛대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다
스레드에 어떤 40가 고민하는 내용을 올렸다.
대출로 집을 사기는 싫고
전세를 계속 오르고, 이제 서울에서 살기는 어렵다고.
아니, 이 자는 40대인데 아직도 레버리지의 효능을 모른다고?
그러고 보니, 나도 40대가 넘어서야 대출의 힘을 알았구나.
내가 30대 초반,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1. 대출 없이 3호선 경기권 아파트 매매
2. 대출 5천만 원 내서 마포 역세권 아파트 매매
나는 1번을 선택했고, 동생은 2번을 선택했다.
10년 후 두 아파트의 가격이 어떤 곡선을 그렸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는 ‘안전’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회를 피한 셈이었다.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대출의 원리를 이해하고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경험 덕분이었다.
가끔 회사 후배들이 내게 묻는다.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회사생활을 하셨어요?”
내 대답은 단순하다.
“대출의 힘이지.”
하고 웃는다.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대출이라는 걸 ‘이론적으로’ 배웠다. 실행하기까지 망설임과 불안이 얼마나 컸는지는 말할 수 없다.
투자 세팅을 다 하고 나서 점검해 보니, 내 인생의 진짜 리스크는 ‘퇴사’였다.
대출받을 때 사원증의 파워를 알고 나니, 내가 목에 걸 수 있는 것 중에서 사원증이 가장 비싼 자산이구나 싶었다.
반클리프 아펠도, 카르티에 목걸이도 이런 가치를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출 서류에 사인할 때마다 곁에 있던 건 화려한 주얼리가 아니라, 든든한 사원증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직장인이라는 조건과 시간 자체가 모두 레버리지였다.
은행 대출 서류에 사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급여통장을 설정하면 이율이 내려가고,
재직증명서 하나만 보내도 연장이 전화로 가능했다.
세상에!
회사 다니기 싫다고 징징댈 시간에, 그 조건을 최대한 활용했더라면 벌써 파이어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풀대출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퇴직과 함께 사라지는 대출 만기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아파트를 매수할 때도 단순히 금리만 보는 게 아니다.
당시 금리에 +2~4%를 더 얹어 계산해 보고,
마음의 각오를 한 뒤에야 대출을 실행했다.
나는 매월 원리금을 갚는 방식을 선호한다.
레버리지로 매수한 자산은 시세가 상승하고,
적금 붓듯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간 원리금은 결국 1억, 2억 상환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
물론 원리금이 나가니 절약모드가 되지만,
자산이 상승했으니 적당한 여유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레버리지가 항상 달콤한 것은 아니다.
지렛대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내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원리금을 항상 먼저 확보해 계좌에 넣어둔다. 단 한 번의 연체 없이 운용하면 신용등급은 올라가고, 올라간 신용만큼 새로운 대출 기회가 다시 열린다.
여기서 말하는 레버리지에 리볼빙이나 카드론은 절대로 해당하지 않는다.
주식 레버리지 투자도 나는 하지 않는다.
대출받아서 가상자산 투자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
딱 내 정신력과 급여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유지한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는 나의 ‘간 사이즈’다.
투자는 항상 잘 될 때를 기대하는 만큼, 그 반대일 때 재빨리 가드 올리고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레버리지는 단순히 빚이 아니라 지렛대라는 걸 빨리 깨달을수록 자산 성장의 규모와 속도가 달라진다.
물론 잘 쓰면 자산을 키우는 도구지만,
못 쓰면 삶을 끌어내리는 블랙홀이 된다는 것도.
그래서 더더욱, 60세 이전에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레버리지를 통해 자산의 사이즈를 키우는 것,
그리고 현금흐름을 세팅해 두는 것.
그 이후에는 은행도, 사회도, 내 몸도 더 이상 큰 지렛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레버리지는 기한이 있는 기술이다.
쓸 수 있을 때 과감히 쓰고, 늦으면 놓친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간 사이즈’.
나는 아직도 내 간이 소간인지 대간인지 매일 점검 중이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도 좀 더듬어 본다.
전생에 작은 고양이라도 구했다면 노력과 함께 꼭 필요한 ‘행운’도 가늠해 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