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좋아, 아주 좋아
내 몸은 늘 어딘가 아팠다.
오늘은 배가 아프고, 내일은 다리가 아팠다.
세상의 속도와 방향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시간도 길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해내는 일들이 내겐 히말라야 등반 같은 도전이었다.
취직, 회사 생활, 연애…
남들은 비교적 쉽게 적응하는 것 같은 일들이 나에겐 늘 낯설고 버거웠다.
남녀평등을 말하다가도 군대 문제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반반 결혼’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논리를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게 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여겼다.
체력이 남들만 못해 쉽게 지치고, 뒤처지는 탓이라고.
그래서 내 앞날은 늘 극단적이고 비극적이었다.
언제고 끝장나버릴 것 같은 뾰족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돈이 제일 좋다고 느낀 순간은,
그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었을 때였다.
병원 치료, 마사지 같은 관리를 받을 때.
돈이 있으면 통증을 줄일 수 있었고, 돈이 없으면 고스란히 몸으로 버텨야 했다.
걱정 없이 돈을 쓸 수 있을 때, 정말 돈이 고맙고 든든했다.
그러나 불안은 늘 곁에 있었다.
월급만큼의 현금 흐름을 만들려고 애써온 나 자신이 잠깐씩 대견한데, 동시에 혹시 숫자를 잘못 본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따라다닌다.
60만 원을 600만 원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곱하기를 틀려서 금액이 부풀려진 건 아닐까?
머니트리가 고장 나버리면 어쩌지?
나는 원래 숫자에 약했다.
100만 원을 입금해야 하는데 1천만 원을 입금한 적도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어찌어찌 해결은 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어릴 적에도 그랬다.
더하기와 빼기를 배울 때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동원하고도 답이 안 나와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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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의 나는 스스로를 억압하며 잿빛 시간을 보냈다.
그 반대급부로 언제나 여행을 꿈꾸었고,
통제하려 드는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그것이 십 대의 내가 체험한 인생의 패러독스였다.
돈이 있어야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돈이 있어야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갈 수 있었다.
돈이 있어야 부모님께 잡혀 들어오지 않을 수 있었다.
어린 나에게 돈은 곧 ‘자유’였다.
그러니 돈 냄새가 얼마나 달콤하고 황홀하게 다가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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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과 가방, 신발에 무심하지 않았다.
특히 시계를 좋아해 어린 나이부터 비싸고 웅장한 시계를 차기도 했다.
그런 아이템들을 지금도 30년째 애정을 담아 쓰고 있다. 후배들은 내 패션 아이템의 연식에도 놀라지만,
그보다 내가 그 물건들을 산 연도와 가격을 기억한다는 것에 놀란다.
생생하게 기억하지.
그날의 날씨와 기분,
그 물건을 사면서 품었던 로망도.
그리고 통장 잔고까지.
고가의 물건을 살 때마다 산수를 하고 또 하고,
심호흡을 몇 번씩 한 뒤에야 결정을 내렸다.
그 고심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단단히 저장되어 있다.
나도 그냥 무난한 브랜드, 무난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제품보다 디자이너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이템 앞에서 느껴지는 전율!
나만 아는 그 디테일의 매력들.
세상에서 쇼핑이 제일 재미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가질 수 있다면,
돈 따위 다 가져가 버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백화점을 샅샅이 뒤지던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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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돈은 곤경에 빠진 약자를 도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도 했다.
나에게 그 약자는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 아이들에게서 내 모습을 미러링 했던 것 같다.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길 위의 생명들.
그들이 모두 가여웠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돈을 쓴 대상은 가방이나 시계가 아니었다.
병든 길고양이들을 데려와 치료하고 돌보는 일이었다.
그 일은 나에게 삶을 이어갈 힘이 되었고, 큰 기쁨을 주었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병든 길고양이들을 데려와 울고 웃으며 병원에 다니고 입양을 보냈던 이야기로 만도 책 한 권은 나올 것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 놈들이 나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지만,
나는 그 일을 평생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생활전선이 고되기도 했고, 많은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 나는 고양이라는 생명체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나만의 한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을.
은퇴한 나의 곁에는 많은 고양이들이 있을 것이다.
치즈냥이, 고등어, 얼룩이들.
내 머니 트리의 최대 수혜자가 될 녀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