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변화구를 기다리는 타자에게 하고 싶은 말

스윙, 스윙, 스윙

by Mira

나는 스포츠 경기를 별로 즐겨 보지 않는다.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긴장감이 이상하리만치 내 몸에 전염돼 금세 피곤해진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순간은 너무 드라마틱해서 숨이 막히기도 한다.


특히 야구의 타자는 그렇다.

발끝으로 모래를 탁탁 고르고, 배트를 쥔 손아귀가 긴장으로 열었다 닫혔다 한다.

공이 오기도 전에 이미 수만 가지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 늘 투자자를 떠올린다.


투자 시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안정’이다. 앞이 예측되지 않는 건 곧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시장도 예측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늘 예상치 못한 변화구가 날아든다.


그래서 나는 포트폴리오를 분할 해 놓는다.

다양한 섹터와 종목을, 인덱스라는 울타리 속에 담아둔다. 위기의 위기가 몰려와도 단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그건 타자가 스윙을 하기 전, 발끝으로 모래를 다지는 행위와 비슷하다.

불안정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작은 의식 같은 것.


인생도 그렇다.

내가 AI까지 동원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늘 어긋나는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보는 건, 과녁의 정중앙을 맞히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점수판 안에는 화살을 꽂기 위한 연습 같은 것이다.


멀리서 공이 날아올 때,

타자의 머리와 몸이 동시에 한쪽으로 움직인다.

공이 ‘빡’ 하고 배트에 맞아 튀어나가는 순간의 전율은, 아마 타자 자신만이 알 것이다.

나에게는 투자를 통해 쌓은 기반 위에서, 비로소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전율로 다가온다.


고등학생 때는 그랬다.

과연 내가 저 두꺼운 입시책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이 오긴 할까?


취업 준비생 시절에는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포트폴리오를 들고 전전했다. 영영 이 사회에서 나의 자리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른에는 마흔이 아득했다.

마흔에는 오십의 시대가 올 거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십 년, 이십 년 뒤의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려질 뿐 아니라, 어떻게 디자인해 볼까 하는 디자이너의 마음으로 설레기까지 한다.


타석의 타자처럼 매일 나는 바닥을 다지고 손의 땀을 닦아낸다. 시선은 발끝에 머물러 있지만, 또 다른 눈은 이미 야구장 너머로 날아가는 공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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