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영어로 영어실력 키우다 보니 이런 일이.
해외 1년 살이 후, 8살 되던 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이 화상영어.
4년째 영어학원 수업 전혀 없이 화상영어를 통해 만족할만한 실력을 쌓았지만 그동안 엄마 마음에 참을인(忍) 새기던 날들도 무수히 많았다.
그 순간들을 나열해 보자면.
-- 화상영어 시작 후 1년 미만 --
1) 레고만들기
낯가림 심한 아이가 화상영어 강사와 친해지게 하기 위해 레고를 사주고, 그 레고로 만든 걸 강사님께 보여주며 강사의 리액션을 듣길 바랐다. 아이는 수업 전에 신나서 레고를 조립하고, 수업시간엔 자랑하기에 바빴는데 문제는,
아들 : "Give me a mins, I need to change here."
이렇게 말하고는 강사와의 대화보다 오히려 레고에 더 집중해 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는 점이다.
엄마 마음 : '이제 레고 치우고 대화에 집중 좀 하지!'
2)포켓몬 그리기
아이가 좋아하는 포켓몬도 초창기 화상영어 수업에서 주요 소재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지라, 본인이 그린 포켓몬을 보여드리며 자랑하고 또 한국인에게선 절대 볼 수 없는, 원어민들 특유의 저세상 리액션으로 칭찬받으며 아이의 자존감까지 상승되는 듯했다. 게다가 누가 세고, 어떤 힘을 가졌는지 설명하는 시간은 그 어떤 교과서 수업보다도 생생한 회화를 배울 수 있으니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포켓몬 수업을 하라고 권유했었다. 문제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강사님과 서로 누가 잘 그리는지 시합도 했다는 점이다.
엄마 마음 : '아들아, 그림을 꼭 수업시간에 그려야 하니?'
-- 화상영어 1년~2년 --
3) 숨바꼭질
낯가리던 아이지만 1년이 지나면서는 친한 강사님들이 제법 생겼다. 코로나 초기로 집 밖에 나가기도 무서웠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건 더더욱 꿈도 못 꿨다. 8살, 9살이니 놀이에 대한 욕구는 없지 않을 터. 아들이 어느 순간 친해진 강사님들과 놀기 시작한다. 수업 시작 후 장롱에 숨고, 책상아래 숨고, 문 뒤에 숨어서 숨죽여 무선헤드셋에 이야기한다.
아들 : "Find where I am now!"
강사님이 한 번에 맞히면 또 다른 곳으로 숨고, 못 맞히면 맞힐 때까지 계속되던 숨바꼭질.
엄마 마음 : '아들아, 그만 숨고 나와서 샘 얼굴 보고 대화 좀 하지?'
4) 운동
하루는 마트에 갔다가 헬스장 앞에 붙은 광고를 봤다.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을 자랑하던 트레이너의 사진과 함께. 아이는 사람 몸이 어떻게 저렇게 되냐며 신기해했고, 그날 하루종일 그 생각이 머리에 남았었는지 집에 와서 화상영어 수업하는데 그 이야기를 강사에게 했다. 강사는 마침 남자분이었는데 운동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며 그날부터 아이와 함께 수업시간에 운동을 시작했다.
엄마 마음 : '음.. 화상영어 시간에 운동... 음...'
-- 화상영어 2년~ 현재 --
5) 좀비흉내
조금 더 컸다고 이번에는 좀비에 빠진 아들. 좀비에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아들을 통해 처음 알았다. 어느 날 아들이 좀비를 흉내내기 시작한다. 25분 수업시간 내내.
강사님이 말해도 좀비스럽게 '으어어어어~~ ' 이런 식으로 대답하고, 좀비 옷 만든다고 아빠가 안 입는 옷 자르고.
강사님은 웃기다고 까르르 난리가 났지만
엄마 마음 : '휴.. 뭘 굳이 그렇게 열심히 흉내 내고 그러니... 그냥 가만히 있어도 크게 다르지 않..'
6) 선생님 말 따라 하기
이것도 정말 친한 몇몇 남자 강사님에게만 하는데, 강사님의 말을 무조건 따라 한다.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이건 강사님이 정말 어려운 tounge twisters를 여러 번 하고 나야 따라 하기를 그만두게 되는데, 이걸 또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tounge twisters는 또 대충 따라 하게 되고..
엄마 마음 : '이럴 땐 매가 답인가봉가'
아들의 초등 3년, 모든 순간엔 화상영어 강사님들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루에 2~5 시간씩을 화상영어에 투자했으니 말이다. 레고, 포켓몬, 숨바꼭질, 운동, 좀비흉내, 강사말 따라 하기.
엄마의 마음에 참을 인을 새겼다고 투덜댔지만, 사실 이 순간들이야말로 아이의 영어를 한 층 끌어올려준 감사한 시간들이다. 레고를 만들고 포켓몬을 그리며 강사님들에게 받은 찐 리액션들은 어떤 영어원서에서도, 그 어떤 영화나 티브이 시리즈에서도 볼 수 없다. 학원 강사가 아무리 원어민이라도, 아이의 아웃풋을 하나라도 더 뽑아야 하는 입장에서 한 아이에게 25분간 그런 찐 리액션을 보여줄 리는 더더욱 없다. 이 리액션들이야 말로 아이의 뇌에 직접 새겨지는 소중한 영어의 밑거름이다.
숨바꼭질과 운동. 해외살이 하며 친구들과 혹은 학교 선생님과 했어야 할 활동을 집에서 화상영어 강사와 한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원서만 줄줄 읽는 아이가 아닌, 실생활 영어도 능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단어만 외우고 영어책만 읽어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귀한 것들을 놀고 운동하며 배웠으리라.
좀비흉내와 선생님 말 따라 하기도 노련한 강사님들로 인해 학습적인 부분은 꼼꼼하게 채워지는 수업들이었다. 아이가 아무리 까분다고 한들, 고작 9~10살이었으니 좀비흉내로 '으어어어'만 외치거나, 강사님 말을 그대로 따라 할 때 강사님이 말씀하신다.
"Ah, I see. You said that you want more math home work, okay I'll let your mom know!"
-아, 너 수학숙제 더 하고 싶다고? 알겠어, 어머니께 말씀드릴게!
아이가 엄마가 내주는 수학 숙제를 싫어하는 걸 아는 샘의 작전이다. 그럼 아이는 'no'를 말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좀비흉내나 강사님 말 따라 하기를 그만두게 된다.
때로는 수업 몇 시간 동안 너무 놀기만 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자기 전에
"엄마, 내일 수업에는 안 까불고 공부할게"라고 먼저 이실직고하기도 한다. 물론, 내일이 되면 또다시 신나게 까불지만 말이다. 아이는 이 시간들을 학습으로 전혀 인지하지 않고 즐거워했음은 물론이다.
엄마는 조바심에 아이가 빨리 교재를 펴고, 한 마디라도 영어로 더 하기를 바라지만,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사실 이 순간들이야 말로 아이 영어를 성장시키는데 참을 인(忍)이 아닌, 오히려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