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단편 소설을 읽고

나는 왜 소설 속 한 단어 ‘안녕’에 멈춰 섰을까

by 양지욱


누군가 말했다. 낯선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고.”

〈안녕이라 그랬어〉라는 제목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낯선 작가, 낯선 제목. ‘누가 안녕이라 그랬다는 걸까?’ 주어가 빠진 문장처럼 보였다. 그 궁금증 하나로 책장을 넘겼다.


〈love hurts〉 노래로 시작하는 것은?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 노래 맞나? 킴 딜과 로버트 폴러드 버전이란다. 유튜브에서 바로 찾아 들어보았다. 음! 그 노래 맞구나. 어렸을 때 듣던 Nazareth의 쉰 목소리는 아니지만. 짙은 우울감이 배어 있는, 낮은 목소리로 남녀가 함께 부른다. 왜 노래로 시작하지?

동거하는 남자 친구 헌수가 들려주는 노래. 30분 만에 다 읽고 잤다. 평소에 읽던 습관대로 빠르게 읽었다.

다음 날 아침 6시부터 6시 30분까지 다시 읽었다. 다시 읽다 보니 어젯밤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페이지에서 네이버 사전을 검색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 초등학생처럼 포스트잇에 베껴 썼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함, 감탄사로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이란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을 만났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습관처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편한 사이가 아닌 사람에게도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아무 탈 없이 편안하냐고 물어본 거였다.‘안녕’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애정으로 드러난 따뜻한 단어였다.

이어 김애란 작가도 찾아보았다. 1980년생. 인천 출신. 서산에서 자람.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가 졸업, 현재 45세. 2011년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문단에 데뷔한 지 벌써 몇 년째야? 상을 이렇게 많이 타고. 글 쓰는 햇병아리는 커녕 아직 달걀도 안 된 나에게는 너무 벅찬 그녀다. 글을 잘 쓰고 싶지만 마음만 앞서 문장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나. 웅덩이에 쳐박힌 자존심이 잠깐 질투로 변하는 순간이다.

한 달 전에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펴낸 이주윤 작가의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하여》에서 김애란 작가를 만났다. 제1장 첫 번째 꼭지로 ‘다 가진 여자, 김애란’이라는 제목으로 시작이되었다. 아니, 이런 작가가 있었나! 남편은 그 유명한 극작가 고재귀(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졸업하여 희곡만이 가진 문학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 라고 하는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결혼하고 30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거니?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러니 내가 글을 쓰겠다고 세상을 향해 겁 없이 덤볐을 때 딸이 난리 치며 소리 지를 수밖에.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써?” 왜냐하면 그 애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출판계의 동향을 잘 알고 있었다.


이어서 표현된 문장 ‘독자들이 열광한다는 김애란, 임경선, 이슬아’. 음 이슬아는 알겠다. 유튜브 ‘세바시 강연’에 등장해서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다’라는 재목으로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그날 첫눈에 반했다. 특히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프랑스의 기호학자, 문학이론가, 작가, 교수) 가 ‘글쓰기는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순간 그 말에 반해서 이후에 글 쓸 때마다 빌려 쓰곤 했다.

독자들은 김애란 작가를 왜 좋아할까? 슬슬 궁금해진다.


한편, 어떻게 해서 이 글을 읽게 되었냐교?

학교에서는 매년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하는데 올해 ’독서교육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다. 15시간 참여하면 1학점이 인정된다. 《노인과 바다》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미 읽었고, 이번에 세 번째로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게 되었다. 모임을 주관하는, 사서 선생님이 읽을 책을 선정했다.

세 번째 읽었다. 천천히 읽었다. 세 번째 읽어서 그런가. 아니다. 문장이 간결하다.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지향하는 글쓰기 특징에 잘 맞는다. 쉬운 언어로 간결하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들이 차례대로 일으켜 달라고 내 눈앞에 누워 있다. 현재와 과거가 섞인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 연상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외출할 때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걸치는 옷처럼 물 흐르듯이 입고 있다. 천천히 읽으면 되는 거였다. 처음 읽을 때 무심했던 생각은 간식을 주면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 가져다 몇 번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 우리 집 강아지처럼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맛인지 멋인지 전혀 느낄 수 없는 이야기로 보일 수밖에.

이전에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은 이유는 빨리 읽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빨리 완독하겠다는 1차적인 목표 때문에 바로 읽고 끝내버리기 일쑤였다. 읽었다는 포만감만 있었다. 특히 소설은 더 심했다. 장편 서설보다 단편 소설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김은미라는 여주인공. 팝송 〈love hurt〉를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마침도 노래와 연결 지어 끝낸다. 시골 여자. 45세. 교사였던 어머니를 7년 동안 간호하느라 회사 그만두고 남자 친구 헌수도 떠나보내고, 시골 고향집은 팔리지 않아 돈이 없어 어디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혹시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 시간당 1만 6천 원의 영어 회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안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노래 가사 중 암 영, 아이 노우(I’m young, I know)가 나오는데 여주인공은 암 영을 안녕으로 들린다며 ‘안녕이라 그랬어’라며 헌수에게 말하는 장면(헌수는 그날 가사를 친절하게 설명하며 부정했다.)이 오늘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으며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음식. 그래 엄마는 자기 음식을 제일 좋아했지. 다른 사람 칭찬을 잘 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는 거의 재난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나의 말 )

-모든 어른이 좋은 부모는 아니라는 거, 특별한 뉴스는 아니지.(로버트의 말)

-아무튼 별거 없었어. 우리 아버지 부고 안에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는 거 전혀 몰랐던 사실도 아니디. 이미 알고 있던 걸 한 번 더 확인한 것뿐인데 이 허전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로버트의 말)

-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나의 말)

......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 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헌수의 마지막 말)

마지막 다시 밑줄 그은 문장은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 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였다.

2개의 문장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글자도 뺄 수가 없다. 특히 ’참‘이라는 부사. 좋다. 참 좋다. 요즘 글 쓰기에서 자꾸만 빼라고 강조하는 부사. 단어 하나하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 수식어인 부사는 문장에서 필요하면 반드시 넣어야 하는데 그 부사를 자꾸만 삭제하라고 하는 현실이 조금 아쉬울 뿐.


제목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네 번 읽고 드디어 제목의 실체를 찾았다. 많고 많은 한국어에서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 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안녕’이라는 단어. ‘안녕’은 〈love hurts〉 노래와 연결되어 남자 친구와의 이별의 슬픔을, 로버트와 영어 회화하며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잘 드러나게 한다.

죽을 때

나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남겨줄 단어 ‘안녕’

그 순간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왜 소설 속 한 단어 ‘안녕’에 멈춰 섰을까.

빠르게 넘기던 책장을 멈추고, 언어와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안녕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며, 때로는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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