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견디는 하루

나는 타고난 재능이 아무것도 없다.

by 양지욱


어떤 글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스며든다.


젊은 날 내 인생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봄날의 햇살도 가혹해 보였고,

여름날의 소나기도 가혹해 보였다.

가을날의 단풍도 가혹해 보였고,

겨울날의 함박눈도 가혹해 보였다.

날마다 맹목의 지렁이처럼 배를 깔아 붙이고

암울한 시간의 배면을 기어 다니는 인생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평생 행려병자로 살다가

길바닥에서 동사해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공중부양 따위는 꿈도 꾸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타고난 재능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글에 미쳐 있었고

글을 즐기면서 살았다.

--《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읽었다. 또 읽었다. 다시 읽었다. 울지 않았다.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졌다. 무너짐은 때로 위로다.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이 감정을 지나갔다는 걸 알게 되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 사람의 시간은 나의 오늘과 너무 닮았다.

햇살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고, 비마저 시원하지 않던 날들. 단풍은 뚝뚝 떨어지고, 함박눈은 어깨에 내려앉았다.

내 안에 쌓인 침묵들이 그 문장 하나하나에 울림처럼 번졌다.

“날마다 맹목의 지렁이처럼 배를 깔아 붙이고 암울한 시간의 배면을 기어 다니는 인생이었다.” 거의 두 달 동안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 그저 버티는 게 전부였던 날들을 살아오면서도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사실에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잘 쓰지 못해도 쓰고, 아무도 읽지 않아도 쓰고, 그래서 무너진 날에도 쓰고. 그래도 끝까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위로였다. 아무리 작은 삶이라도 누군가의 문장 속에 이렇게 크게 남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아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게 힘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글을 읽고 잠시라도 안도할 수 있게.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조금은 더 견딜 만해졌다.

진심 어린 문장은 눈과 귀, 심장까지 닿을 수 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조용히, 따뜻하게 위로가 되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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