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너무한 거 아녜요? 아니, 어떻게 이래요? 왜 사람 하나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고요. 누구 진짜 죽는 꼴 보고싶어 그래요? 봤잖아. 다 봐왔잖아. 몇 번을 내가 죽어봤는지.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내가 어떻게,살아왔는지, 다 봐왔으면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죽을 죄 졌다고, 이렇게 날 못 살게 구냐고요. 말 해 봐요. 말 좀 해 달라고요 맨날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하.. 됐다 그래. 당신한테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뭐.. 그래요. 말하기 싫음 마요. 그러니까. 많이 안 바랄 테니까. 그냥 봐요. 이렇게라도 좋으니까. 이대로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봐줘요.. 한번만요.. 네? 이번 한번만 어떻게 좀.. 그냥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빌었다. 한참을 빌고 또 빌었다. 그날이 안 되면 다음날 또. 그래도 안 되면 다담 날 또. 그조차 아니면 그 다음날, 그 담날 또, 한동안을 맨날맨날 빌어봐봤지만, 결국, 신은 그 한 번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온 마음을 다하면, 간절하게 기도한다면, 희망하는 그 무언가를 신께서 들어주실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졌다. 그렇다고 뭔갈 하려는 희망 자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야 뭘 하건 안 하건 간에 그런 나를,
알아주니까. 그렇게,
안아주니까. 그러한,
당신이니까.
“신경 섬유종 제2형”
희귀병이었다. 말그대로 온몸에 있는 신경마다 종양들이 자라나는 그런 병이었다. 내게 그런 병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과 공포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평소엔 가지도 않던 성당에 꼬박꼬박 다니면서 하느님, 예수님, 그 누구라도 좋으니까, 기적이든 뭐든 뭐라도 다 좋으니까. 더는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제발 여기서 멈추게 해 달라며 절절하게도 빌고 또 빌곤 했다. 그러나 기적이 기적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말그대로 그건 기적이라서였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게 아닌, 특별한 소수에게만이 내려지는 희귀한 기적이기에 기적인 거였다. 난 다수에 속했다. 기적처럼 병이 완치되는 일 없이, 그저 대부분의 의학적 사실로써 기재돼어있는대로 그렇게 평범했던 감각들을 잃게 됐다. 그렇지만,
“기적이라니.”
기도를 들어주셨어. 하늘이 도와주셨어! 고생했다, 고맙다, 너무너무 고맙다며, 이제 더는 아프지 않길 내 두 손을 꼬옥 잡은 채, 꽉 안아주는 엄마였다. 이렇게 있어줘서, 이대로 볼 수 있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기적이라는 엄마였다. 그치만, 이게,
“기적이라고?”
저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데, 저 혼자 밥도 못 떠먹는데, 뭐 혼자 되는 일 하나 없는 이게 기적이라고? 매번 내 기저귀 갈아주면서. 매 끼니때마다 이것저것 일일이도 떠다맥여주면서. 온갖 일이란 일은 나 대신 다 해주는 이게. 이대로 아무 것도 안 하는 내게. 그런 나 땜에 매일매일 일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다만보고있는 거. 아무 것도 못한 채, 그냥 이 상태로 나만 다 해 먹는 이런 똥기저귀 같은 기적이라면. 이런 이기적인 기적이라면. 난 그런 것 따윈 안 바랬다. 그런데도 엄마는 바랬다. 다 좋으니까. 기적이든 기저귀던 뭐래도 다 좋으니까. 이렇게만 있어 달라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대로만 있으라고. 엄마가 다 해 줄 거라고, 엄마만 딱 믿고있으라는 데.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말이야 괜찮다 괜찮다지만,
“많이 상했잖아..”
“속상하게..”
바빴다. 안 그래도 바쁜 집안에 장애가 있는 나까지 옆에 꼭 끼고 살아가려니 엄마의 하루는 무척이나 바빠졌다. 제 머리조차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처럼, 옆에 돌봐주는 사람 없이는 혼자 아무 것도 못하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신해주는 집안일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밖에도 애기 기저귓값이라도, 애기 분윳값이라도 벌러 매일같이 이 일이고 저 일이고 밤낮없는 바깥일들까지 서슴치 않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엄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이러다 엄마 잘 못 되면 어떡하냐고 이 소리 저 소리 잔소리해대는 내게 아유 난 괜찮다고, 엄마는 알아서 잘 하고있으니까 엄만 신경 끄고 너만 신경쓰라고하지만. 잘하긴 뭘 잘하고 있어. 잘 좀 먹고 다니지. 잠 좀 자고 가지. 내 몸만 잘해주지 말고 엄마 몸도 좀 챙기지.. 그렇게나 보들보들 했던 손인데. 아기 피부처럼 뽀송뽀송했던 엄마 손인데. 왜 이렇게 꺼칠꺼칠해진거야..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손으로는 알 수 있었다. 그 가녀린 손으로 날 대신해주는 건 고된 일이란 것도, 내 하루를 위해주는 엄마의 하루가 고단할 것이란 것도, 속으론 많이 고생스러울지도 모른단 것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와닿을 수 있었다. 그럴 텐데도 힘들다, 지친다, 아무런 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엄마, 그런 엄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었다. 나 때문에 애타는 걱정과, 힘쓰는 수고로움 없이 몸 편히, 맘 편히 마음껏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날 위해 고생하는 엄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치만 그럴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도는 드리면서도, 내 마음처럼, 신이 들어주리라고 기대는 안 했다. 올 지 안 올지도 모를 기적에 언제까지고 기도만하고있기보단 차라리 모은 두 손 얼른 풀고 있는 힘 없는 힘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뭐라도 하는 실로 더 믿음이 갔다. 실로 그랬다. 몸은 진실했다.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달라져가고있었다.
“이제 더는 기저귀를 안 차게 됐다.”
한 개라도 더, 한번이라도 더, 낑낑대가며 재활운동한 끝에 기저귀를 뗐다. 몇 번이고, 뭔 날이고 계속 운동했더니 애기들 발걸음마 떼듯 조금이지나마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닐 수도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 이거. 도대체 뭐라는 건지 도통 알아먹을 수 없을 깟난아기 옹알옹알거리는 것만 같은 애기애기한 얘기들만 나왔었는데, 이제는 내 이야기 쓴 글로 밥벌어 먹고사는 어른이가 됐다. 근데 이게,
“기적이라니."
굉장히 억울했다. 먹고 싶은 거 끅 참고 깨작깨작거리면서, 하고 싶은 거 참아가며 끄적끄적거리면서 겨우겨우 한 건데. 이 고생 저 고생 온갖 고생고생 다해가며 한 것들에 엄마는 거봐, 엄마가 뭐랬어, 너 다 잘 되게 해 달라고 엄마가 매일매일 기도했다고, 하늘이 우리 아들 도와주신 거라고, 그니깐 얼른 감사드리라고, 건강하게 해주셔서, 기적을 내려주셔서 감사 또 감사하라는데, 나로썬 납득할 수 없었다. 기적이라는 건 인간의 힘으로 설명불가할 때나 쓰이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이건 너무나도 명확했다. 재활선생님께 설명받은 대로 운동한 건데. 재활운동할 수 있을 운동신경 살려준 의느님께 수술받아서 뭘 할 수 있었던 거지, 이건 기적이라 불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피땀흘려 일궈낸 기술이였다. 이것도 그랬다. 이 글은 뭐 하늘이 대신 써줬나. 이제껏 내가 기 빠지게 글공부 해 애써 쓴 건데. 그렇게 득한 작문기술로 타낸 상금이고, 그걸로 사온 이게, 기적이라니. 이건 뭐 하늘에서 떨궈줬냐고, 땅에서 솟아줬냐고, 이거 내가 직접 한 거라고 빠득빠득 기를 쓰며 설명하는 내게 하이고 그래 니 잘났다 그래 하며 대충 날 알아주는 엄마다. 마지못해 그래그래하며 고생했다고 날 꼭 껴안아주는 엄마다. 조그마한 베이비로션 선물일 뿐인데도 아이처럼 크게 기뻐하는 엄마다. 언제나 우리 아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이것도 저것도 다 잘 되게 해주세요 기도해주는 엄마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솟아나게 됐다. 이거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을 때 엄마 한 번 생각해보면 그 이상 한번만 더, 조금만 더, 하게 됐고, 내 맘대로 듣지 않던 몸이 되게 됐고, 맘처럼 되지 않는 글이 되게 됐고, 그 어떠한 말도 안 될 일이라도,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러한 당신이기에 신에 기대진 않더라도 기도는 드린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평안케 기댈 수 있을 엄마가 내 엄마라서. 그런 엄마가 믿고, 기도하고, 의지할 수 있을 곳이 되어주셔서, 그 어떤 말로도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내 사랑인 우리 엄마 아들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