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by 과학자미뇽

소의 새끼는 송아지. 말의 새끼는 망아지. 돼지의 새끼는 도야지로 태어난다. 송아지가 크면 소가 되고. 망아지가 크면 말이 되고, 도야지가 크면 돼지로 자라난다. 그러한 당얀하고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 속에서 나는 흔들린다. 나는 누구인지. 아니, 무엇인지. 나는 무엇으로 태어났으며. 무엇으로 자라날까. 그럴 수는 있을까. 잘할 수가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못나면 어떡하지. 그러면 어떡하지. 때로는 들소처럼 들이받고만 싶은데. 때로는 야생마처럼 날뛰고만 싶은데. 때로는 멧돼지처럼 헤집고만 싶고, 때로는 독수리처럼 치솟고만 싶고, 때로는 호랑이처럼 포효하고도 싶다. 거칠은 야생이 되고 싶다, 그렇게 자연이 되고 싶고, 그토록 자유가 되고 싶다. 내 안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있는 야성을 낱낱이 드러내어 날카로이 휘갈겨버리고만 싶다. 하지만 분노처럼 들이받고만 싶을 때, 음욕처럼 날뛰고만 싶을 때. 탐욕처럼 헤집고만 싶을 때, 교만처럼 치솟고만 싶을 때. 시기처럼 빼앗고만 싶을 때. 나태처럼 게으르고 싶을 때. 슬픔처럼 포효하고도 싶을 때 등 내 안의 여러 감정들은 결국 좋세 좋게 풀어지곤 한다. 밑바닥에서의 거칠어진 야성이 가장 높은 곳의 최고를 향한 야망으로, 거침없는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은 내가 날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이나, 내가 그 어떤 부정이든지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짐승이라서다. 때로는 송아지, 때로는 망아지. 때로는 도야지도 아니고 이 소새끼, 말새끼, 돼지새꺄 내 걸 왜 니가 쳐먹냐며 타박주는 누나. 이 썅노무새끼 또 또 뭐 깨먹었냐고 구박주는 엄마. 맨날 꾸중하는 누나와 엄마완 달리 늘상 그럴 수도 있지 뭘 우쭈쭈 내 새끼 커버쳐주는 아빠가 있는 나의 가족 때문이다. 내 맘이 그렇다고 내 맘대로만 하면 가족들이 욕먹기에 난 보다 잘하려고 한다. 다만 내가 잘하겠다고 해서 곧장 잘할 수 있을 능력은 없다. 뭘 하겠다곤 했는데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럴 땐 내가 미워지곤 한다. 소는 일이라도 잘하는데. 말은 가기라도 잘 가는데. 돼지는 맛있기라도 하는데.. 나는 뭐야.. 내가 소보다도, 말보다도, 돼지보다도 못난 것만 같다. 그치만 그런 못난 나일지라도. 뭘 못하는 나일지라도. 니가 뭐가 못났냐고. 어디가 어때서 그러냐고. 너가 못하든 못나든 잘한다 잘한다 내 새끼야. 누구보다 잘났다, 잘났다 우리 새끼라고 해주는 가족들이 있음에 어제가 어땠어도. 오늘이 어땠어도. 내일이 어떻데도. 그럼 어때. 그냥 간다. 어제의 내가 어떻든, 오늘의 내가 어떻든, 내일의 내가 어떻든. 잘해질 수 있을 때까지. 매일을 간다. 거침없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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