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아버지

by 과학자미뇽

산타아버지__

고요한 방. 조용한 방. 어둠에 묻힌 방. 날은 이렇게나 밝은데. 나는 왜 그리도 어두운지. 힘내라는 말들도 힘만 더 빠지고, 힘들어도 밝게 살아야 한다, 그럴수록 긍정적이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건네오는 위로조차 부정적으로만 들렸다.



“보이지가 않아서.”



안 들리는 귀로 뭘 할지. 마음처럼 안 듣는 팔다리로 뭘 할지. 이런 몸으로 나 어떡해야 하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캄캄하기만 했다. 근데.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걱정하지 말란다. 뭐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단다. 내가 다 해 줄 거란다. 그냥 이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그렇게만 있어줘도 괜찮다는 그 모습을 보았다.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하나도 안기뻤다. 무척이나, 야위어있었다. 그럼에도 그 헬쑥한 웃음을 쥐어주며, 조용히 나를 안아준다. 그럼 난,



고요하다. 그리고,



아늑하다. 그렇게,



다 괜찮아진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면, 집집마다의 굴뚝을 타고 내려와선, 조심조심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 살짝 선물을 놓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산타할아버지. 그는 꿈속에서나 뿐만 아닌 현실로도 존재했다. 아직 모두가 꿈나라에 빠져있을 이른 새벽부터 조그마한 편의점에 출근하여 밤낮없는 편의점일을 끝마친 후엔 집집마다 전해줄 선물보따리 가득 실은 선물차에 갈아탄 채, 길고긴 새벽을 달린 후에야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다. 어쩌면 산타보다도 더 후할지도.



“산타는 가리니까.”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 주는 산타할아버지완 달리, 아빠는 누구에게나 주었다. 시종일관 “메리크리스마스~” 하는 듯한 웃는 표정으로 어린얘들 보면 귀엽다고 막대사탕 하나 더 쥐어주고, 나이 꽤 드신 어르신 분들부터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노총각 등등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귀하신 한 분, 한 분들마다 때론 아들처럼, 때론 아빠처럼, 때론 친구처럼, 판매하는 편의점물품들 위에 친근한 우스갯말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허구한 날 이건 어떻고, 저건 저떻고 불평불만이래도, 이게 뭐야, 저게 뭐야, 아니 그게 뭐냐고 구박만 해대도, 이것저것 투덜투덜 못되게 구는 그런 나일지라도, 그저 웃어줬다. 못된 나를 다그치기는커녕 오히려 다 괜찮다고, 우리 아들 뭘 해도 다 된다고, 항상 웃어주고, 다독여줄 뿐이었다. 그래놓고선 이것밖에 못 줘서 미안하단 아빠였다. 짜증났다. 뭐가 미안해. 이것도. 저것도. 다 해 주면서, 왜 아빠가 미안해 해. 내가 더 미안한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는 멋있는 옷들을. 아침, 점심, 저녁 끼니때마다는 제철음식들로 차린 영양가 있고 맛있는 식사로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 부족함 없는 하루를 받아왔지만, 난 그저 바라다볼 수밖엔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밤 늦게까지 편의점 한 켠에 앉아 컵라면이니 도시락 같은 각종 편의점 식품으로 끼니 때우는, 사시사철 단벌로만 새벽을 배송하는 아빠에, 난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괜찮은 음식점 한 번 데려가는 일도, 괜찮은 옷가지 한 벌 사드리는 일도. 일년중 단 한 번뿐인 생일 케이크 하나 해주지 못하는 것 등 내 하루를 위해주는 아빠의 하루에, 난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늘 한결 같은 아빠미소로 괜찮다고, 아빤 너만 있어주면 다 괜찮다며 되려 울상인 날 달래주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하얘졌다. 머리털이 희끗희끗해졌다. 턱에도, 코에도 수염들이 희끄무레졌다. 못 보던 주름도 몇 줄 더 늘어났고, 산타할아버지처럼 배만 뽈록 튀어나온 게, 아빠 정말 할아버지 다 됐다고, 어떡하냐고, 울상이 된 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빠는 예끼 이놈 벌써 누굴 할애비 취급이냐고, 나 아직 팔팔하다고, 나이 먹으면 다 늙어가는 거지 뭐 당연한 것 같고 왜 이리 유난떠냐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허허 웃어넘기곤 하는데. 내가 아직도 세살짜리 깟난얘로 보이나. 알았다. 알 만큼 알았다.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주는 건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란 것도, 그 선물 있으려면 그에 맞는 값릏 치러야 한단 것도, 그 선물 값은 누가 선물로 주는 게 아니란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건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 아니었다. 잔잔한 내 하루를 주기 위해 잠 줄여가며 일하는 아빠의 하루였다. 하루온종일을 매 번 그러는 아빠의 하루였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해주고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단 아빠의 하루가, 그 하루하루들이 아빠의 시간을 하루빨리 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다 알았다. 그래서 더 앓았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음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오지만,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



알았다. 다 알았다. 산타아버지는 내가 착한 아들인지, 못된 아들인지, 모든 것을 다 알고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일들도 마다하지 않은 채, 그 어떤 날이라도 머무르지 않은 채. 어둠속에 있는 날 늘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런 아빠에게 좀 더 괜찮은 하루를 주고 싶었다. 더는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다 괜찮으니까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잘 듣지 않는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그렇기에 이것만 했다. 신체적으로 힘쓰진 않아도, 마음으로 맘껏 쓸 수 있는 글, 그것만을 했다. 그치만 마음이 그렇다고 마음처럼 잘 되진 않았다. 이거 할 거라고 하긴 해도 원췌 글이란 것에 깜깜했다보니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다 싶을 정도로만 뭐가 써지지도 않고, 어떻게저떻게 나름 애써 내 투고한 글마다 떨어지기 일쑤여서 마음은 또 초조해져만 갔다. 하지만, 웃어줬다. 재밌단다. 잘 했단다. 꼬옥 안아준다. 그럼 난,



고요해진다. 그리고,



아늑해진다. 그렇게,


다 괜찮아진다.



산타할아버지. 그 존재만으로 수많은 아이들에 꿈과 희망을 선물 해 주는 산타할아버지. 언제나 나의 산타아버지는 다정한 품속으로 나의 꿈을 지켜주었다. 꿈이다. 몇 번을 떨어져도, 몇 밤을 다시 찾아오는 꿈이다. 꿈이다. 몇 밤 지새워 쓰러져도, 한숨 푹 곯아떨어지고 나면 다시 괜찮아질 꿈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밤 안개속에서 갈팡질팡하는 날 이끌어주는, 아버지의 품에서, 갈 수 없는 곳은 없었다. 밝게 빛나는 루돌프 코처럼 해밝게 웃으며, 산타할아버지가 탄 썰매를 맨 앞에서 끌어가듯이 맨날맨날을 나아가졌다.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졌다. 그렇게 흰눈 사이로, 썰매를 끌듯 달리는 기분은 상쾌도 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글쓰기에 재미도 붙이고, 이 상, 저 상 각종 문학상도 타보는 경험도 하게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너무너무 기뻤다. 맨날 괜찮다, 괜찮다 하더니 하마터면 안 괜찮을 뻔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타 받은 상금으로 맛있는 것도 쏘고, 멋진 옷도 선물 해 드렸더니, 아주 싱글벙글 웃음이 귀에 헤벌쭉헤벌쭉 걸린 아빠였다. 그닥 큰 선물도 아닌데 행여나 닳을까봐 애지중지하게 조심히 다루며 소중하게 매일을 지니시는 아빠.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나 좋아라 하는 산타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좋아져서, 보다 나은 하루를 선물 해 주리라고. 내일 또한 근사한 매일을 선사 해 드릴 거라고. 그곳에서 우린,


언제나 항상,


이제와 같이 영원히,


길이길이 사랑하리라고.

작가의 이전글엄마vs아빠vs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