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은 봄처럼 피어나 여름처럼 뜨겁다가 가을처럼 무르익어 겨울에도 짙어가지만, 어떤 사랑은 봄에는 잠깐 설렜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지나갈수록 말없이 식어가다 결국엔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랑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닐 거다. 그건 그냥 하는 사랑이 아닌, 너무, 너무 사랑했기에, 봄이 오나, 여름이 오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사랑한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맘도, 그 어떤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멀리서만 바라보는 것밖에는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말하고는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라서, 뭐라도 해주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서,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알았다곤 해도 혹시나 이 사랑이 부담스럽지나 않을까, 괜히 뭐 했다가 실수하지는 않을까, 만약 이 사랑이 상처라도 된다면? 만약 그 사람이 싫어라도 한다면? 등등 수많은 가정들로만 끝나버린 사랑일 수도 있고, 끝도 없는 만약에, 만약에만 되뇌이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사랑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어떠한 말도, 마음도 못하고, 못다한 마음들만 남긴 채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가듯, 조용하게, 잔잔하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계절처럼 흘러갔던 사랑. 그런 사랑이 나의 첫사랑이었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건 이제 고등학생 2학년으로 첫 등교한 새학기 첫날의 봄이었다. 새로 배정된 교실, 새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 “안녕?”, “난 누구누구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새로 만난 반 친구들과 인사 나누던 와중 순간 뭐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뭐가 뭔지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릴 만큼 예뻤던 그 사람이었다. 하얗디하얀 피부결에, 조그맣게 앙다문 입술, 높다랗게 오똑 선 코, 동그랗게 또렷한 눈. 허리까지 흘러내린 긴 생머리의 그녀는 뭐랄까. 참 예뻤다. 그냥 이쁜 게 아닌 정말정말 예뻤다. 그래서 더 의외였다. 뭔가 고아하고 정숙해보이는 그녀의 첫인상만으론 뭔가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웃음조차 과묵한 사람일 것만 같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나도 반가워~ 난 누구누구야~” 인사하는 목소리 톤부터가 굉장히도 애기애기했다. 게다가 수업시간 열심히 집중하다 꾸벅꾸벅 조는 모습, 쉬는시간 이 친구 저 친구들과 하하호호 수다떠는 모습, 급식시간 오물오물 밥먹는 모습, 모습들을 보노라면 그냥 너무너무 이쁜 것 뿐만 아닌 정말, 정말 귀엽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나 예쁘고, 그렇게나 귀여운 애가 나 같은 평범한 남자앨 좋아할 일도 없을 뿐더러 괜히 좋아하는 티냈다 실수하는 건 아닐까. 행여 실수가 없어도 그 애가 싫어할 건 아닐까. 등등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그냥 같은 반인데 괜히 뭐 했다가 불편하게 하지 말고, 좋아하는 마음은 있되, 없는 듯 혼자서만 좋아하려고였다. 그저 빨간 책가방을 멘 채 등교하는 뒷모습이라도. 해맑게 친구들과 재잘대는 옆모습이라도. 그밖에 어떠한 그 얘 모습, 모습이건 다 좋았다. 그냥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의외였다.
“안녕 ㅎㅎ.”
선톡이었다. 맨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던 그애가 내게 보내온 선톡이었다. 순간 뭐지..? 선톡이라는 건 누가, 누구와 친해지고 싶다 할 때 하는 거잖아! 사실 그 애도 나랑 친해지고 싶었구나! 하고 완전 좋아라 하고 있다가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답장부터 써 보내려하는데 아놔.. 그럼 그렇지.. 여기가 어딘지, 누가 누군지 할 것조차 없었다. 나한테 하는 인사가 맞긴 맞는데 그건 나에게만 하는 인사는 아니었다. 이 친구, 저 친구, 너나할 것 없이 같은 반 친구라면 모두다 있는 그곳, 반톡방에서었다. 근데 그건 그렇고,. 이뻤던 건 진즉에 알고있었는데. 귀여운 것도 나중엔 알고있었는데. 이렇게도 예뻤구나, 저렇게도 귀여웠구나 싶었다. 생긋 예쁘게 웃음 짓곤 귀엽게 쁘이 하고 찍은 사진. 반톡방에 있는 그애의 프로필사진을 보며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더 알고싶어졌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그 애지만, 그냥 그렇게만으로도 좋은 그 애지만. 이렇게 멀리서만 바라보지 않고. 그렇게 혼자서만 웃음짓지 않고. 지금보다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 혼자 말고 같이 웃을 수만 있다면. 그 애랑 더 친해질 수가 있다면. 그렇게 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에 보낸 첫 문자였다.
"안녀어어어엉 ~~"
하지만, 안녕 인사 나누던 첫만남 이후론 말 한마디 나문 적도 없는 애가 뜬금없이 개인톡 걸면 갑자기다 싶을 까봐 그 뒤에 덧붙인 말.
" 앗!! 미안, 미안!! 여기 반톡방인 줄 알았당 ㅋㅋ. 혹시 나 알려나 모르겠네?? 나 너 뒷자리 누구누구야!! 우리 같은 반인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하는 문자로, 말을 걸게 되었다. 근데 생각지도 못했던 게 있었다. 생각보다 말이 잘 나왔던 것이었다. 처음엔 좋아, 해냈어! 내 존재를 알렸어! 하는 정도로만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나중에 또 말 걸어야지란 생각이었는데 막상 괜찮아, 괜찮아 ㅎㅎ, 앞으로 인사하며 지내자고 답장받으니 괜시리 나도 히히 괜찮아지는 게, 문자 한 통 정돈 더 보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애한테서 온 답장에 "그래, 그럼 내일부턴 인사하고 지내자!"는 말로 대화를 끝내지 않고 "근데 오늘 급식 진짜 맛 없더라는 식으로 말끝에 말을 덧붙이면서 그 애와 문자를 트게 됐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그 애는 그저 이쁜 모습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귀여운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문자, 저 문자 주고받는 그 애는 이러이러한 걸 좋아하는데 저러저러한 건 그렇단 그 애였다. 요러요러한 건 괜찮은데 또 조러조러한 건 저렇단 그 애였다. 이러한 것들은 이러하고, 저러한 것들은 저러한 그 애였고, 어제는 이런 것을 했고, 오늘은 저런 것을 하고, 내일은 그런 것들을 하기 등등 서로의 하루하루를 나누면서 우리는 점차 가까워질 수 있었다. 등교할 때 마주치면 안녕? 교실에서 마주쳐도 안녕? 오다가다 복도에서 부딪쳐도 안녕? 인사 나눌 만큼 친근해졌고, 꼭 학교에서 뿐만 아닌, 방과 후에도 놀곤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그치만 이런 말, 저런 말 많이 나누었을지라도 누구누구야 좋아해, 사귀자는 고백은 할 수 없었다. 그냥 골똘히 수업 듣고있는 네 모습이 예뻤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끙끙 문제풀던 네 모습이 귀여웠다고. 그리고, 오올 제법인데~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네 모습과, 우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멋있다고 말해주는 네 모습 등 그밖의 너의 모든 모습, 모습 들이.좋아서. 네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 나. 나도 네가 좋아졌다고 하는 너. 그렇게 쌀쌀했던 꽃샘바람이 가고, 화사하게 봄꽃잎이 피듯, 조용하게, 잔잔하게, 자연스럽게 그러하게 너와 나 우리는, 봄이 되었다.
안녕~ 하는 인사와 함께 등교하기. 수업시간엔 열심히 공부하는 척, 몰래몰래 문자나누기. 쉬는시간이면 재잘재잘 수다떨고, 오늘 밥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급식시간과, 하교시간 잘 가~ 내일 또 보자고 인사하자마자 “벌써 보고싶어ㅠㅠ”, “가지 마아아아~,” 매일같이 설레이는 봄날이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이쁜 건 알았지만. 귀여운 것도 나중엔 알았지만. 오늘도 예뻤다. 내일도 귀여웠다. 매일이 새로웁게 그러했다. 어쩔 땐 봄빛처럼 따스한데, 어쩔 땐 여름빛처럼 청아했고, 어떨 땐 가을빛처럼 수수한데 어떨 땐 겨울빛처럼 투명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닮은 그앨 보고있을 때면 보고있다고 좋았고, 보고있지 않을 때는 보고싶다고 좋았다. 언제라고 할 것 없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그 애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그러했고, 이러한 하루하루가 매일같이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잤어?”, 하고 와있는 그 애의 문자메시지로 오늘 하루가 잘 되게 됐고, 잠들기 전 “잘 자~” 하는 인사를 보면 내일 하루도 그러하게 됐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하루하루였고, 이대로만 잘 지내게 되길 바랐던 매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좋아했던 우리라서. 그렇게나 좋아했던 그 애라서.결국 우린,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어떤 사랑은 상대의 외모가 맘에 안 들어서. 어떤 사랑은 상대의 행동이 맘에 안 들어서. 또 어떤 사랑은 상대와 시간이 안 맞아서. 또 어떤 사랑은 상대와의 연락문제나 성격차이 등
헤어질 이유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 내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단 그애였다. 내 행동이 어떠면면 잘 잡아줬을 그애였다. 그리고 서로 만날 시간도 맞았었던 우리였고, 마음과 마음도 맞앆었던 우리였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로 지내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를 좋아함을 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좋아함을 받는 것도 잘해야했다. 그러하지 못해서. 우리는 그냥 좋은 친구로서 지내기로 했다.
등교시간, 수업시간, 쉬는시간, 급식시간, 하교시간, 그밖의 모든 시간, 시간들엔 항상 함께였던 우리였지만, 서로 마주한 채 같이하지는 못했다. 하루종일을 재잘대던 우리였지만 그건 입으로 하는 말보단 핸드폰으로 하는 문자였다. 핸드폰 문자상으로 하는 대화로는 "어제는 그러그러했고 오늘은 이러이러하고 내일은 저러저러할거다란 말끝마다 하트 이모티콘까지 뿅뿅 핑크빛으로 곧잘 말했다가도 현실에선 짤막한 안..녕..? 후엔 같이 걸어갈 때도 머뭇머뭇, 같이 얘기할 때도 어름어름, 그밖의 같이만 있음 뭔가 어색어색해지는 데다 커플들끼리 자연스럽게 하는 그 흔한 손잡기는커녕 단순히 손끝만 스쳐도 순간 경직 돼버리는 딱딱한 나였다. 그치만 그게 그애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뭐라고 말하곤 싶은데.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뭐가 안 됐다. ‘이거 말해줘야지’, ‘이거 해줘야지’, 밤새도록 준비하고 또 준비했던 그 어떠어떠한 것들일지라도 그애 앞에만 서면 순간 그 어떤 무엇도 다 뭐가 뭔지 그냥 새하얘지고 말았다. 뭐 작은 것 하나하나 준비한 것들은 많았지만 그저 마음만 너무 커서 뭐 하나 할 수 없게 되는 나였어서. 모든 게 좋았어서, 그냥 좋은 게 아닌, 너무너무 좋았어서.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는 가을과 겨울이 오기 전 어느 비 오는 날에. 조용하게, 잔잔하게, 자연스럽게, 그러하게, 그 애는,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당연한 거였다. 자연스러운 거였다. 오히려 이게 맞는 거였다. 그렇게나 예쁜 애가. 그렇게도 귀여운 애가. 나 같은 애를 만나는 것 자체가 정말 아까운 일이니까. 그 애는 더 멋진 사람과 더 많이 사랑하고,그 못지않게 더 많이 사랑 받아야 하니까. 그 애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 애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우린 그냥 좋은 친구로만 지내게 된 것은, 아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근데 뭐가 뭔지. 뭐 이리도 부자연스럽기만 한지.. 차라리 잘 된 거라 애써도, 뭐 하나 잘 되지가 않았다. 듣는 수업도 뭐라 하는지도 모르겠고, 먹는 밥도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뭐 하고 뭐 하는 일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그저 두 눈엔 그 애만 잡힐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내 마음은 여기인데도. 손 내밀면 닿을 거기인데도. 바로 두 눈앞에 있는 그 애인데도. 우리 그냥 친구 안 하면 안 될까. 우리 그냥 다시 좋아하면 안 될까, 내가 진짜 잘해보겠단 말. 매일매일 잘해주겠다는 말. 그 어떠한 말과, 어떠한 맘 그 무엇 하나조차 전하지 못 했던사람이었다. 그저 가까이에서만 남몰래 바라보기만 할 뿐, 어제도, 오늘도, 내일을 멀리서만 바라만봤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아무런 맘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간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그리고 돌아오는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간 졸업식날까지조차 끝끝내 “안녕” 한마디 인사하지 못한 채, 조용하게, 잔잔하게, 자연스럽게, 그러하게, 계절처럼 흘러보냈었던 사람이었다. 뭐라고 할 수도 없을 거면서. 뭐라도 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하고싶은 말도, 해주고 싶은 맘도, 그 어떠한 맑과, 맘과 그 무었조차 어쩔 줄을 몰라 할 거면서. 어쩌자고 난 늘 바라봤을까. 또 어쩌자고 난, 멀리서 다가갔을까. 떠날 수도 없는 나는 그저 뒷모습만 보면서 보았던 것은 그 모습 뿐인 걸.
언제나. 하지 못한 아픈 말. 그 맘을 다하지 못해줘서 더 아쉬웠던 마음이었다. 보고 싶다, 잡고 싶다, 닿고 싶다, 아프게 웃었다. 하얗게 웃는 그 애에 날 물들이며 웃다가도, 보지 마라, 잡지 마라, 그대로 머물러라 아파도, 그 애 곁에 머물곤 했다. 첫만남부터 난 그러하였고, 또 마지막에도 말없이 고요하였다. 너무나도 좋아했기에 아무 것도 못했던 날들; 못다한 말들, 못다한 맘들. 아무리 하려고 애를 써도 그저 그 자리 그대로만 보고 싶다, 잡고 싶다, 닿고 싶다, 그렇게 웃었다가, 이젠 보지 말자, 찾지 말자, 이대로만 머무르자 웃고 울고 하던 그러한 사람이었다. 동그란 웃음으로 날 하얗게 비춰준 그 사람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난 봄이었고,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그 어떠한 계절도, 모두 다 좋았다. 그 사람으로 인해 봄은 다정했고, 여름도 상냥했고, 가을도 포근하며, 겨울도 따뜻했다. 그러한 예쁜 계절들을 보여줬었던 사람. 그러한 그 사람을 그렇게나 좋아했던 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서. 그러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었어서. 그 때 그 시간과, 그 때를 돌아보는 지금 이 시간, 이은 너무, 너무 예쁘다. 평범했던 내 시간들을 빛나게 해줘서, 너무, 너무 고마웠고, 너가 나에게 그래줬던 것처럼 너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그 어떠한 날도, 어떠한 시간도, 너의 모든 순간, 순간까지 모두 다. 예쁜 하루, 멋진 하루, 좋은 하루, 하루로 행복하게, 눈부시게, 그러하게 잘 지내길 바라봄을 끝으로 덧붙여 붙이는 마지막 문장,
“안녕,”
“잘 지내”
“나의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