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잘 되고 계신가요?

나는야 자식농사꾼

by Miranda

가을장마인가 비가 몇 날 며칠을 끝없이 온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보일러 연통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다.

며칠 전 선착순으로 [학생 마음 건강 증진 학부모교육] 참가 신청을 받길래 소싯적 티켓팅하던 솜씨를 발휘해 신청을 하고 오늘 비바람을 뚫고 교육을 들으러 갔다.

수업받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고 졸기도 많이 졸지만 부모가 되고 나니 학부모 교육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신청만 하면 무료로 이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주는 것은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 다 함께 자식 한 번 잘 키워보자는 마음이겠지.


오늘 강연의 주요 주제는 자녀와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법, 그리고 자녀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온전히 자녀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우리 딸과 대화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양한 영상자료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정말 내가 우리 딸과 대화를 한 것이 맞는가?

혹시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한 것은 아닌가?

대화를 할 때 난 우리 딸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어 주었는가?


돌이켜 보니 딸에게 지시하고 훈계하고 했던 것들을 대화로 착각했던 것 같다.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나의 말하기였다. 그리고 딸의 말에 경청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반성하게 되었다. 딸이 나에게 종알종알 속삭여 줄 때 온전히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경청을 해 주어야 했는데... 집안일하면서, 휴대폰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만 해 주었던 것 같아서 갑자기 딸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 오늘의 강의를 곱씹어 보다가 가슴속에 남아 있는 단어 하나가 맴돌았다.


"자식농사"


이 단어는 본강연 때 나왔던 내용은 아니었고, 교육장님의 인사말 중에 나온 단어였다.

자식농사란 말을 우리나라에서만 쓴다고 한다. TV 프로그램, 영화, 소설책,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속에서도 자주 나오는 단어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의 특성이 담긴 아주 예쁜 말.

자식을 키우는 것을 마치 농사를 짓는 것에 비유한 말.


우리는 농사를 위해 농부들이 정성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도 너무 잘 안다.

또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하고 농작물에 사랑과 정성을 쏟아도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와 같은 통제하지 못하는 요인에 의해 실패할 수도 있다. 농부들은 한 해의 농사가 실패했다고 해서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년의 농사를 위해 땅을 갈아엎고 준비를 한다.

농사가 매 년 풍년일 수 없고, 흉년도 있는 것처럼 자식농사도 풍년과 흉년을 오가며 내공이 쌓이겠지.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는 마음일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좋은 농작물이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비옥한 땅에서 좋은 농작물이 자랄 확률이 훨씬 높다.

자식을 잘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척박한 땅이 아니라 비옥한 땅이 되어 주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에게 아름다운 말과, 힘이 되어 주는 말, 언제나 든든히 지켜주겠다는 믿음을 양분으로 하는 비옥한 땅이 되어 자식이라는 농작물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태양을 바라보며 잘 자랄 날 수 있도록.


나는 자식 농사에 입문한 지 10년째 접어든 농사꾼이다.

10년 정도 농사를 지어보니 후회와 반성 속에 나름의 노하우도 생긴 것 같다.

앞으로 농사를 지어야 할 날이 더 남았고 기상이변과 같은 사춘기라는 단계가 오면 그 난이도는 더 올라갈 것이기에 힘이 들 때마다 농부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해결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농부는 인내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해야 한다.

자식농사꾼인 나는 인내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랑으로 자식을 길러내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이 필요한 일은 바로 자식농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사랑은 돈이 들지 않으니 얼마든지 마음먹은 대로 줄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새참 먹었으니 다시 힘내서 농사지으러 휘리릭 가 본다.


모든 자식 농사꾼들 오늘도 파이팅!!!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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