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그거 저한테 많아요!
오랜만에 미술관에 들렀다.
오늘은 도슨트를 들을 수 있었다.
도슨트와 함께 하는 것은 작품 감상의 깊이와 재미를 더 크게 느끼게 해 주지만 도슨트 시간과 맞추기가 쉬운 것은 아니라서 오늘은 운이 좋았다.
요즘은 어플과 이어폰을 이용한 도슨트도 있지만 직접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오늘의 전시는 땅, 물, 불, 바람 : 윤옥순의 회향이라는 주제였는데, 윤옥순 화가는 포항 출신의 화가로 50년간의 작품활동 여정을 작가의 고향인 포항에서 조망하는 전시로 첫 회고전이다.
초창기 그림은 내가 알고 있는 그런 동양화의 느낌이었다면, 갈수록 작가 특유의 화풍이 느껴졌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전 바라보던 작품에 대한 시선과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끼는 것이 관람을 더욱 나를 즐겁게 만든다.
분명 설명을 듣기 전에는 물고기로 보였는데 설명을 들은 후 새로 보이는 매직이라니...
작가의 작품에는 모두 생동감과 열정이 느껴졌었는데 도슨트가 열정이라는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열정은 한 곳에만 쏟지 않는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도 열정을 전달한다]
이 화가는 물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실험실에서 직접 수소와 산소를 조합하여 물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스킨스쿠버를 통해 물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그림에 열정을 쏟기 위해 가지치기로 열정들을 뻗쳐나갔다.
해바라기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작가는 해바라기에 열정을 쏟아부었고 해바라기 씨 하나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에서부터 해바라기에 대해 모든 걸 꿰뚫은 듯 한 추상화 느낌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다양한 곳에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물인 작품을 우리는 감상하면서 한 점의 그림에서 무수히 많은 영감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風-생명의 비상]이라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단순히 선과악의 싸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흰색은 투명하고 깨끗한 존재, 검은색은 악의 존재라고 진부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검은색은 악(惡)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색을 다 섞었을 때 나오는 색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완전체가 된 것이라고 이해했다.
완전체가 되려면 한 가지의 열정만으로는 될 수 없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다양한 열정이 모이면 드디어 블랙라벨을 단 완전체가 된다.
나는 열정을 쏟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바쁘고 조그마한 틈이라도 나면 그 시간에 또 다른 일을 벌이곤 한다.
배우고 읽고 쓰고 움직이고....
어떤 이들은 이런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좋게 말해주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만 제대로 하지 너무 많은 곳에 열정을 쏟으면 이도저도 아니라며 충고를 하기도 한다.
그런 충고를 들을 때면 내가 잘못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깊이 없이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고민할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무수히 많으니깐.
그런데 막상 수박 겉핥기를 해 보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만 같은 얕은 지식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줄줄이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지는 것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돌고 돌아와서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 결국은 알아내었다는 생각과 함께 무한한 성취감을 느꼈다.
나는 가슴속에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다.
열정이 없으면 모를까 열정 가득한 사람은 그 열정을 한 곳에만 쏟을 수 없다.
그리고 이 행복한 경험을 나만 할 수 없기에 주변에 열정을 전파하고 다닌다.
수박 겉핥기로 얻은 얄팍하고 다양한 지식이 많기 때문에
인생에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잘 맞을법한 취미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오늘 무수히 많은 도슨트의 말 중에서 콕찝어 저 말이 가장 뇌리에 박힌 것은 아마도 그동안 받았던 충고들에 위축되어 있었던 탓인 것 같다.
그래! 나는 그냥 열정 가득한 사람일 뿐이다.
앞으로도 나의 열정을 기대하시라. 어디로 튈지 모르니.
나는 저 작품 속 검은새가 되고 말테다.
202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