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삼촌은 결혼을 늦게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늦은 나이는 아닌데 그 당시에는 다들 노총각이라 불렀다.
외삼촌은 38세에 결혼을 하셨고 40이 넘어 아기가 태어났다.
외삼촌이 결혼할 당시 이미 나는 성인이었다.
나는 결혼적령기에 결혼을 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른 나이에 했다고도 생각이 든다.
나는 결혼 후 4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고 그렇게 우리 딸을 만났다.
외삼촌은 내 결혼식 때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둘째와 함께 참석하셨다.
그래서 내 막내 사촌동생과 우리 딸은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촌동생들이 4살, 8살이 되었을 때 우리 딸이 2살이어서 아기를 보러 온다며 자주 놀러 오곤 하였다.
사촌동생들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나도 우리 딸까지 애 셋을 잘 데리고 놀았다.
셋은 마치 친자매처럼 아주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갑자기 사촌동생 둘이 속닥속닥 거리더니 표정이 시무룩한 것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다가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다가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사촌동생들이 대답했다.
"얘가 너무 불쌍해 얘는 엄마가 없잖아"라며 울상을 짓는 것이 아닌가.
"얘들아~ 얘 엄마가 왜 없어. 언니가 얘 엄마야~"라고 웃으며 대답해 줬더니
"언니는 언니지 엄마가 아니잖아, 얘는 엄마가 없고 할머니랑 언니만 있어서 불쌍해" 라며 우리 딸을 토닥여 주며 위로해 주었다.
아직 말 못 하는 2살 아기인 우리 딸은 영문도 모른 채 똑같이 시무룩한 표정을 흉내 내며 내 등을 토닥여 주고 있다.
내가 계속 설명해도 사촌동생들은 들을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딸은 엄마를 옆에 두고도 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가 되어 하루 종일 사촌동생의 위로와 케어를 받았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고등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그때의 얘기를 하면 펄쩍 뒤며 그런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너무나 순수한 아이들의 행동.
그때는 육아에 지쳐 소중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기록하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남아 있는 기억들을 바닥까지 긁어내어 기록해 두어야지.
그래서 너희들 시집갈 때 꼭 선물로 줄게.
기대해❤️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