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날 포기하지 않았잖아.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니라

by Miranda

설레는 마음을 앉고 대학을 입학했던 때가 생각난다.

수능을 치기 전까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즐거울 것만 같았고 신나게 놀 일만 가득할 줄 알았던 그때.

고등학교 시절에는 새 학기가 되어도 알고 지낸 친구 1~2명쯤은 있었는데

이제 대학은 정말 뿔뿔이 다 흩어져 간다.


그냥 학교만 가면 모든 게 다 물 흘러가듯 하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고등학교가 아닌

오롯이 스스로 다 해내야 하는 대학은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우리 과는 공대에 비해 인원이 많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날 30명도 채 안 되는 동기들이 모여 자기소개를 했다.

동네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다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또 간혹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어서 더 긴장되었다.

한 명씩 소개를 듣다가 경북 영주에서 온 머리가 아주 샛노랗고 히피펌을 한 친구가 자기소개를 했다.

너무나도 개성이 강해 보이고 자기주장이 강해 보여 나는 속으로 "쟤랑은 잘 맞지 않겠다. 친구 하긴 힘들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는 A라 하겠다.


신입생이라 수강신청을 하는 법을 선배들이 알려준다고 우리를 데리고 학교 전산실로 갔다.

전산실에 빈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에 여학생이 앉았다.

나는 용기 내어 먼저 인사를 건네었는데 그 여학생의 반응이 시원찮다.

용기를 내었는데 상처를 받고 나는 또 혼자 생각했다. "얘랑도 잘 맞지 않겠네. 친구 하긴 힘들겠어"

이 친구는 B라 하겠다.


친구 A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었다. 강렬한 외모에 편견을 가졌던 게 무색할 정도로 친구는 다정했고 나는 그 친구와 함께 하는 게 좋았다. 친구 덕분에 대학생활도 안정을 찾아갔다.

그런데 친구 A는 나에게만 다정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 A는 어느 날 친구 B를 데려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친구 B에게 거리감이 있었는데 우리는 셋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방학이 되면 친구 A는 고향인 영주로 돌아갔고 그러면 친구 B와 나만 남게 되어 나는 어색했다.


친구 B는 어느 날부터 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얼마나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는지 학교 수업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나는 친구 A와 함께 학교를 다녔고 캠퍼스 안에서 친구 B를 만나면 인사치레로 왜 수업에 오지 않냐며 말을 건넸다. 그 말을 건넨 다음날이면 친구 B는 수업에 들어왔고 내 옆에 앉았다. 어색한 상황이 싫었던 나는 그동안 수업시간에 정리했던 필기나 수업 일정을 공유해 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전히 불편한 채로 1학년이 지나갔다.


친구 B는 어느 날부터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자주 연락했고 나는 친구 연락을 다 받아주었지만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은 없었다. 친구의 연애 상담도 들어줬고 친구가 남자친구와 다툰 날에는 그 얘기를 들어주다가 친구랑 싸우고 삐지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물론 그 곁에는 무던한 A가 늘 곁에 있었다.


친구 B는 소심한 나에게 말을 심하게 할 때도 있었고 또 부담스럽게 챙겨 줄 때도 있었다. 나는 친구 B가 나랑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런 친구 B가 불편해 여전히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나는 친구 B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친구 B와는 대학 졸업만 하면 끝일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 잘 지낸다.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내 친구.

물론 이렇게 된 것에는 묵묵히 곁에 있어준 친구 A와 내가 벽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먼저 두드려준 친구 B의 역할이 컸다. 친구 B는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항상 연락해 주고 챙겨주었다.

친구 A와 B 가 아니었다면 우리 셋의 관계는 진작에 끊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이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과거의 나의 행동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항상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직도 먼저 연락해 주고 챙겨주는 친구 A, B에 대한 고마움에 나도 지금은 먼저 연락하고 다가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내 마음에 대한 죄책감도 혼자 조용히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 친구 B와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수다를 떨며 드라이브를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말을 꺼냈다.

"나이가 드니 인간관계가 하나씩 다 정리가 되더라. 나는 내 성격을 이해해 주고받아주는 친구만 남고 다 정리가 된 것 같아"

나는 뜨끔했다. 과거에 내가 친구를 밀어냈던 기억이 생각나면서 친구에게 되물었다.

"나는 네 성격을 못 받아줬는데.... 용케 남았네?"

그랬더니 친구가,

"내가 학교 결석하고 말썽 부릴 때 네가 기다려줬잖아. 네가 날 포기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친구인 거고. 그때 날 포기했던 친구도 많았는데 너는 날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워"


정말 갑자기 울컥했다.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나는 그런 적 없다며 네가 오버해서 생각하는 거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친구는 내 맘 다 안다며 이미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버렸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친구야,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니라 네가 날 포기하지 않은 거야. 날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자책하기보다는 그 마음을 지금이라도 친구들에게 표현하려고 한다.


친구들의 보살핌만 받았던 금쪽이가 2025년 11월 3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