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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8. 2020

내가 나의 주치의이고 전문의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매년 1월에 정기 인사 발령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발령장’ 종이 한 장에 직장인들은 짐을 싸고 낯선 곳으로 떠납니다.  

선호하는 지역과 회피하는 지역(부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종이 한 장의 명령서에 앞으로 몇 번을 더 옮겨야 이 직장생활이 끝날까 하는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이 듭니다. 인사발령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이 다른 지역(부서)으로 떠나고 새로운 식구들이 호기심을 가득 안고 옵니다.     



근무 경력이 쌓이면 인사 발령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됩니다. 

정들었던 사람도 떠나지만 정떨어진 사람도 떠난다는 것을. 미운 정도 정이라고 미운 놈 한 놈 간다는 말 대신에 ‘정들었던 사람이 떠나고’ 마음은 아니고 표현만 그렇게 합니다. 

짧으면 2년 길게는 5년을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성장 배경, 사람 됨됨이, 심지어는 가족사까지,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동병상련, 같은 취미, 성향, 학연, 사돈의 팔촌 등으로 더 친해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상대방의 습관이나 취항, 업무를 대하는 태도나 처리능력, 동료들과의 관계 등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고, 가끔 사소한 생각의 차이로 의견 대립도 있어 겉으로 표현은 못 해도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때도 생깁니다. 

편한 일만 찾아다니고,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핑계를 만들어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회식 자리는 꼭 참석해 어려운 일은 자기가 처리한 것처럼 상사에게 아부를 합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미안하기고 하고 쪽도 팔립니다.    


그런 동료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정들었던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정떨어진 사람이 속 시원하게 떠나는 것입니다.

정 떨어진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닙니다. 

더 정떨어질 사람이 올 수도 있습니다. 

새로 맞이할 사람의 책상 서랍을 치우고 닦으면서 정이 솟아나는 사람이기를 기원합니다.   



정들었던 사람이든, 정떨어진 사람이든,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는 누군가 채워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업무분장이란 것이 시작됩니다. 

직장에서 업무란 어차피 다니는 동안 돌아가면서 다 해야 할 일인데 무슨 업무를 맡든지 무슨 상관이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번 새 업무를 맡으면 사무실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2-4년은 해야 합니다. 

또 업무의 강도란 것이 있습니다. 증명서류 한 장 발급하는 것은 1분이면 가능하지만(증명서 발급 업무가 쉬운 일이란 말은 아님, 양이 많음) 1주일 내내 해도 처리 못 하는 일도 있고, 민원인의 재산압류와 같이 직접 재산상의 불이익이 가해지는 업무는 그 강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악성 민원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업무는 대부분 직원이 싫어하는 업무입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을 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승진이나 혜택을 먼저 받는다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과,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란 말이 생각납니다.

결국, 목구멍이, 포도청이, 마음의 여유까지 삼켜버려 직장을 계속 다니게 됩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는 한가하지도 않고 인간미는 더더욱 없어지게 만듭니다.

땀 뻘뻘 흘리며 탑승한 초음속 열차입니다.

기분 나쁘다고 내릴 수도 없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이 서서히 변해갑니다. 

충동적이고 욱하는 성격에 느긋하게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겠지만 동호회 활동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내가 속한 직장의 동호회가 아니라,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연령층이 활동하는 동호회,

그 속에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또 다른 진지한 인생을 엿볼 수 있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곳에는 골치 아픈 업무도, 승진도, 경쟁도 없는 사람들만이 있지 않을까요?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남에게 상처를 주고,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내 상처는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이 위로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의 주치의고 전문의입니다.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춰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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