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의 카페 창가에 앉아
최성철
담쟁이덩굴이 상처를 끌어안은 돌담을 지나
엘피판이 가득한 민낯의 카페 창가에 앉는다
허기진 옛 가수의 노래에 이끌려
모래알처럼 빛나던 가난의 중심에 떨어진다
처마 밑으로 녹슨 빗물이 떨어지면
귀가 어두운 당신의 전축이 거친 잠에서 깨어난다
빗줄기를 타고 절정으로 치닫는 노래에
낡아 빠진 헌 옷의 집들이 흔들리고
가난을 뒤덮은 천막 지붕이 들썩거린다
긴장의 끈에 묶인 골목길이 팽팽하게 늘어나고
챙겨 넣은 속마음이 터지거나 유리 조각이 스치면
수명 다한 외등 걸린 집들이 튀어 오를 준비를 한다
공장의 기계음이 던져주는 밥그릇에
득음의 자리에 올랐지만
단 세 줄의 편지에 가난을 펼쳐놓고
대문을 나서는 누이의 울음소리 듣지 못했다
불어오는 해풍에 절인 가슴 꺼내 놓고
제맛을 찾아가는 당신의 노래
맨발로 휘청이며 걸어가는 엘피판 위에
느닷없이 들이치는 빗금의 사선을 넘는다
솜털보다 가벼운 작은 소망들이 빗물에 젖어
그 짓누르는 무게에 노래의 여운을 담아
중심으로, 중심으로 걸어가신다
세월에 밀려난 옛 가수의 노래는 끝나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그리움도 사는 일의 한 부분이라
다 부르지 못한 그 뜨거웠던 노랫말을 다독이며
눈물 훔치던 기억의 손이
식어버린 찻잔을 들고 있다
-계간 <시인수첩>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