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안이야, 어~ 가자.
아내와 딸이 아이와 함께 나들이 준비를 한다.
“주먹을 쥐고 오른손을 쏘오옥, 손을 펴고. 주먹을 쥐고 왼손을 쏘오옥, 손을 펴고.”
가락에 맞춰 옷 입는 요령을 설명하면서 13개월 된 아이에게 옷을 입힌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할까? 어른들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몸놀림을 보면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지 않을까? 말은 못 하지만, 마치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아이는 어른들과 호흡을 맞추어 가면서 옷을 입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발을 들어 오른발을 쏘오옥, 왼발을 들어 왼발을 쏘오옥. 아이 잘한다.”
아이는 어른들의 손놀림에 몸을 맡긴다. 딸이 아이를 아기 띠로 맨다. 아이는 밖으로 나갈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다. 양말 신발을 신기고 장갑을 끼워준다.
“안이야, 어~ 가자.”
아내가 손자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며 머리카락을 손질해 준다. 아이가 눈을 깜박이며 미소 짓는다.
“안이야, 어~ 가자.”
아내와 딸이 아이와 함께 나들이할 때 아이에게 말하는 ‘어~ ’는 어디일까? 아이와 함께 가고 싶은 그곳은 어떤 세상일까?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즐겁고 눈물 없는 곳이 아닐까?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면 좋겠다. 아늑한 엄마 품과 든든한 아빠의 어깨를 느끼면서 자라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 수 있게 보살펴주는 엄마 아빠가 곧 아이의 천국이 아닐까? 아이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면 좋겠다. 나도 그런 가정에서 살고 싶다.
아이가 시장 공원 어린이집 그 어디를 가건 환대받고 배려받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낯선 곳이다. 때로는 위험한 곳이다. 아이에게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 어떤 때는 아이의 미소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어른에 대한 감사의 표시처럼 느껴진다. 아파서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없이 무력(無力)한 아이에 대한 나의 깊은 감정은 연민(憐愍)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설렘과 확실하지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은 아이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어디 아이뿐이겠는가?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연민의 대상이다. 아이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서로를 보살펴주고 아껴주는 세상이면 좋겠다.
산책길에서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어른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낀다. 반면에 어른 품에 안겨 있지 않은 아이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어른이 곁에 없으면 아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운다. 보호해 달라고 외친다. 아이가 원하는 세상은 자신의 호소에 곧바로 응답하는 어른들이 있는 세상이다. 어디 아이뿐이겠는가? 고통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움의 손길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막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다. 차별받는 사람이 없고, 소외된 사람이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면 좋겠다.
“안이야, 어~ 가자.”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다. 아파트 단지를 돈다. 이웃과 강아지를 만난다. 공원으로 간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본다. 햇살이 연하다.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 바람이 차다. 대기에 온기가 더해지면 좋겠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초록 잎이 쏟아지면 좋겠다. 얼어붙고 어두운 무채색의 땅을 뚫고 연두색 새싹들이 솟아오르면 좋겠다. 그 위에 희고 붉은 꽃들이 얼굴을 내밀면 더 좋겠다. 봄이, 봄이 오면 좋겠다. 24년 12.3 쿠데타 이후 몇 달 동안 계속된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면, 얼어붙은 우리들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아이와 함께 더 밝은 세상에서 즐거운 기분으로 산책하기를 소망한다.
“안이야, 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