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세상이다

6. 먼 곳으로 떠나자.

by 걍보리

‘먼 곳으로 떠나자. 멀고 먼 곳으로.’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마치 학교에 가는 것처럼. 가족 누구에게도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보름 만에 가출을 결심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학교는 종로구 계동에 있었다. 필운동 집에서 광화문을 지나야 학교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광화문이 아닌 서울역 쪽으로 걸었다.

갑자기 뒤에서 아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았다. 거리에서 누가 부를 것만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야, 너 학교에 가지 않고 어디 가?”

주변을 얼른 둘러보았다. 실제로 부르는 사람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서울역 건너편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고속버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몸을 웅크렸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숨고 싶었다.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자 비로소 창밖을 내다보았다.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래그래, 잘 떠났다. 서울 집은 어차피 내가 살 곳이 아니야. 말이 집이지 실제로는 내가 편하게 있을 자리가 없잖아? 나는 개밥에 도토리잖아?’

할아버지 밑에서 살기 싫어 아버지 곁으로 왔지만, 서울로 오자마자 그곳 역시 내가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떠나고 싶었다.

‘내가 떠나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모두 시원해하겠지. 겉으로는 나를 찾는 척하겠지. 하지만 속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할 거야.’

가출하기를 잘했다고 믿고 싶었다.

‘나는 개밥에 도토리야. 아무도 나를 환영하지 않아. 안 보이면 더 좋아할걸.’

이 말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뇌리에서 반복되는 그 말이 나를 몰아세웠다.

‘그래그래. 떠나야 하고말고. 당연히 떠나야지.’

그렇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떨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잘 떠난 것일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불안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살던 곳’과 ‘함께 있던 사람들’로부터 멀리멀리 떠나는 것이 아닐까?’

확신이 섰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였다. 해방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출렁였다. 그날 오후 부산 동래에 도착하였다. 이리저리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낯선 거리였다. 봄날의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마음은 스산하였다. 갈 길을 잃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부산에서도 내가 꿈꾸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버린 어머니를 잊어버릴 수도 없었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생활도 재미없고 팍팍하였다. 내 또래 친구들을 보고 싶었다.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이곳저곳 진달래가 핀 동래산성으로 소풍을 온 고등학생들을 멀리 떨어져서 멍하게 쳐다보았다가 외면하기를 반복하였다. 학생들이 깔깔대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등에 진 채, 솔방울을 줍고 마른 솔잎을 쓸어 망태에 담았다. 손에 힘이 빠졌다. 산성 주변에 모인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깍깍대며 내 주위를 배회하였다.

‘다시 학교에 다녀야 되지 않을까?’

마음은 혼란에 빠졌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현실은 불편하였다. 사는 곳을 옮긴다고 해서, 생활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곧바로 내가 사는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하였다.

어디를 가건 그곳은 내가 사는 내 세상이었다. 나는 내 세상을 떠날 수 없었다.


2000년 여름, 인도를 여행하였다. 거리에는 쓰레기와 함께 거지꼴의 가난한 사람들이 넘쳤다. 바라나시에 머물 때는 숙소를 조금만 벗어나도 매연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웠다. 목구멍이 매캐한 연기로 막혔다. 자동차, 마차, 수레, 자전거, 오토바이, 개, 사람, 소가 뒤엉켜 꿈틀대는 거리는 지저분하고 어지러웠다. 거리에 앉아있는 소나 잠자는 개를 피하면서 자동차가 이동하는 것이 신기하였다. 거리를 차지한 동물들을 내쫓지 않는 것도, 그 동물들이 편안하게 큰 도로에서 자거나 어슬렁거리는 것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붉고 푸른 천을 걸쳐 놓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그곳이 그들의 잠자리고 가정이고 쉼터였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사는지, 대소변은 어디서 보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가난이 인도 사람들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국가는 국민들이 인간적인 삶을 꾸릴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빈부차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 탓일까? 문화 탓일까? 부패한 지도자 탓일까? 개인의 게으름 탓일까? 그것들의 짬뽕 탓일까?’

알 수 없었다.

어쩌다 차창 너머로 눈이 맞닿거나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치면, 그들이 눈을 반짝이며 가벼운 웃음을 건넸다. 편안한 표정이 이방인의 경계심을 부드럽게 무너뜨렸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내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너처럼 살 자신이 없어. 너 힘들지 않아? 사는 것이 무척 힘들지?’

나의 편견이었을까? 아니다. 그들의 행색으로 보아 도저히 편할 수 없었다.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지나가는 내게 돈이나 먹을 것을 구걸하는 손을 내밀었다. 당혹스러웠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원 달러, 원 달러.”

어두운 피부에 큼직한 눈을 가진 아주머니들이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손은 내 가슴께로 내밀었다. 길을 가로막았다. 아이는 입으로 손가락을 물고 침을 흘렸다. 아이와 엄마의 눈동자가 동시에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녀들의 입에는 ‘원 달러’가 붙어 있었다. 한 아주머니를 피하면 비슷한 모습의 다른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그들이 가엾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였다.

‘왜 그렇게 살지? 왜 탈출하지 않지? 왜 도망가지 않지? 왜?’

여행 내내 그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에게 던진 질문이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내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왜 새로운 세상으로 탈출하지 않지? 왜?’

‘지금 사는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아니, 떠날 수 있기나 한 걸까?’

형식만 다를 뿐 그들도 나도 삶의 굴레에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그래. 나도 때가 되면 귀국할 것이다.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늘 살던 대로 살 것이다. 재미없는 일상의 틀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세상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내 세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내 세상을 살 수밖에 없다.


**********


지금 글을 읽는다.

‘추상적인 사람’이 읽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나’가 읽는다.


내가 울고 웃으며

내가 살고 죽는다.


내 세상에서 와서

내 세상을 살다가

내 세상으로 간다.


나는 내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거기는 언제나 내 세상이다.


부모도 친구도 성자(聖者)도

내 세상을 찾아온 사람일 뿐.


내 앞의 꽃은

본래 꽃이 아니다.


그 무엇이 ‘내 세상’에

꽃으로 초대된 것이다.


생명은 세상을 여는 힘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세상을 열었다.

그 세상을 산다.

때가 되면 그 세상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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