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를 붙든 소박한 꿈
몇 달간의 가출 후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말이 돌아온 것이지 여전히 헤매는 중이었다. 외톨이였고 개밥에 도토리 신세는 변하지 않았다. 가출 기간이 길어 출석일수 부족으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제적(除籍)되었다. 하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버지 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복학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싫었다. 전 생애에 걸쳐 아버지와 함께 산 기간은 고등학교 입학을 전후한 두 달 정도였다. 살면서 어쩌다 만나면 그는 신중하게 말을 걸면서 내게 다가서려 하기도 하였다. 그가 미웠기 때문에 나는 곁을 내줄 뜻이 전혀 없었다. 소통을 차갑게 거부하였다. 그의 어떤 말에도 우호적이거나 적극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많은 경우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부산으로 가출하였다가 패배감을 안고서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부산 생활을 지속할수록 절망감이 나를 감쌌다. 나의 경망함과 판단착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간 까닭은 마땅히 달리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울을 떠날 때도 막막하였던 것처럼, 돌아왔을 때도 역시 막막하였다. 어떤 대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자마자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서울 집에서는 단 며칠을 버티기 힘들었다. 한낮의 정적과 무료함, 냉랭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아, 잘못 돌아왔구나.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다. 마음은 떠돌이였고 고아였다.
서울에서 며칠을 지낸 뒤 광주로 갔다. 독일 간호사로 가기 위해 출국 준비를 하던 셋째 고모와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고모가 자취생활을 하는 광주로.
한동안 빈둥거리며 지냈다. 친구도 없었고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광주천을 따라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극락강까지 내려갔다. 강변을 오르내렸다. 흐르는 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서걱거리는 갈댓잎과 함께 제자리를 맴돌았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기를 거듭하였다. 해가 지면 붉게 물든 노을을 등에 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게 셋째 고모가 물었다.
“너는 날마다 어딜 가서 무얼 하다 이렇게 늦게 돌아오냐?”
고모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내면의 소리를 정리해서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해 여름 몇 달간은 내 마음이 성숙하는 빛나는 시기였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싣달타>의 시기였다.
‘나는 누구일까? 왜 사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까?’
둑길을 걸으면서 이런 물음을 내게 던지고 이에 답하기를 거듭하였다. 삶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 듯 말 듯하였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풀려고 몸부림쳤다. 이해와 오해와 착각이 버물려졌다. 이른바 개똥철학자가 되었다.
내 마음의 성장과는 별개로, 내가 현실 세상에 뿌리를 내릴 만한 별다른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노안 산으로 가면 어떨까? 법성으로 가면 어떨까? 내가 지금 알았던 곳 말고 다른 어디 갈 만한 곳이 없을까? 내가 할 만한 마땅한 일이 있기나 한 것일까? 심심하게 일없이 지내는 기간이 길어졌다. 친구도 없었고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졌다.
‘다시 고등학교에 가야 하지 않을까?’
집에 있던 헌책들을 뒤적여 보았다. 이미 배운 내용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진학에 대한 간절한 마음도 없었다. 그저 시큰둥하게 여겨졌다. 그것들을 방 한쪽 구석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어느 날, 놈팡이처럼 늘어져 한심하게 지내는 나를 보고 셋째 고모가 집 앞에 있던 독서실에 가 보기를 권유했다. 그때까지 독서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하고 있었다.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재미 삼아 거기에 가 보았다. 뜻밖에 내 또래들이 있었다.
여름 방학을 맞은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독서실에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고등학교 입시준비를 명분 삼아 독서실로 놀러 나온 것 같았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서로서로 엿보는 것 같았다. 독서실은 공부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고, 어른들의 시선을 피해 멋대로 놀 수 있는 좋은 장소인 것 같았다. 서로 어울려 시시덕거리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쨌든 외톨이로 지내는 내게 그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한동안 사라졌던 십 대 소년다운 활력이 되살아났다. 그들과 어울려 탁구를 쳤다. 때로는 입시를 준비하는 그들과 책을 나누어 보았다. 어떤 친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과 내가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종종 그 집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잤다. 함께 놀면서 생활의 방향을 새로 만들었다.
‘그래, 다시 고등학교에 가자.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지 않은가?’
말썽꾸러기에 떠돌이였던 나는 서너 달 동안 독서실에 다니면서 재수생으로 변하였다. 이듬해 1월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다시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출을 경험한 탓일까? 급우들이 어려 보였다. 그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 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마음에 드는 책을 서가에서 언제든지 빼다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중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책은 매혹적이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
“새는 알을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마치 헤세가 내게 직접 말을 해 주는 것 같았다. 친절하게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너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아. 성장을 위한 진통일 뿐이야.’
‘새가 되어 날려면 기다려야 해. 시간이 필요해. 껍질을 깨고 새 세상으로 나갈 때가 올 거야.’
내 힘만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견디고 기다리라고,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따뜻하게 타이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골드문드의 삶은 탈속적인 종교의 세계로 가고 싶었던 나를 세속도 쳐다보도록 돌려세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쉽게 정하지 못하였다. 어디에도 마음을 모으지 못하였고, 감정은 심하게 흔들렸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방황하였다.
친구들의 자취방을 드나들며 술과 담배 맛을 알게 되었다. 급우였던 준호는 내게 술맛을 알게 해 주었다. 산수동에 있던 그의 자취방에서 쌀 막걸리를 마셨다. 커다란 양푼에 술을 잔뜩 부어놓고 친구 몇 명과 함께 번갈아가면서 술을 마셨다. 그가 들려준 ‘에스파니아 까니’라는 음악 때문이었을까? 흥겨운 가락과 함께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설 때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거리로 나섰다. 전봇대가 춤을 추고, 도로가 일어서서 내 얼굴로 다가왔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아스팔트를 피하지 못했다. 얼굴이 아스팔트에 부딪히고 깨졌다. 아스팔트에 쓸린 오른쪽 볼 살이 뜨겁게 느껴졌다. 벗겨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좋았다.
철이와 한수가 자취를 하던 양동의 작은 방은 나의 쉼터였다. 추운 겨울에는 아예 한수 집으로 가서 살았다. 겨울 어느 날 나를 찾아온 그가 불기 없는 추운 방에서 지내던 나를 끌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술은 슬픔을 누그러뜨렸고, 담배는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유혹은 강렬했다. 도리어 그만큼 무서웠다. 돈이 없어 술과 담배를 쉽게 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를 지켜 주었다.
마음에도 관성이 있다. 가출해 본 경험이 있었던 탓일까? 학생탑을 지나 교문을 나설 때면 갈 방향을 잃어버린 발이 시큰거렸다. 넓은 운동장 너머로 땅거미가 밀려오고 먼 하늘가로 노을이 붉게 타오르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노을이 지는 저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저 길을 따라가면 엄마가 누워있는 바로 그곳이 아닐까?’
가방을 내팽개치고 바로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사람들의 발 사이로 불빛이 흐르는 충장로 거리를 서성거렸다.
‘모두들 자기 길을 가는구나.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따로 갈 곳이 없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어머니가 없었다. 어머니의 부재(不在)를 느낄 때마다 무릎의 힘이 빠졌다.
‘그래도 어디론가 가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흔들렸다. 다시 떠나고 싶은 충동을 견디기 힘들었다.
‘떠나자. 다시 떠나자.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다시 떠나고 싶었던가? 그 기분을 느낄 때면 주먹을 쥐고 몸을 떨었다. 정말 떠나고 싶었다.
‘다시 가출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 뒤에 따라올 어두운 장래가 그려졌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 두려웠다. 떠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아니면 학교에 다니는 목적을 만들어야 했다. 그때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가출을 하였다면 어떤 길을 걸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를 학교에 붙들어 맨 것은 작고 소박한 꿈이었다.
‘나 말고도 나처럼 헤매는 친구들이 많지 않을까?’
‘그래그래. 나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자.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보살펴 주자. 그들 곁에 서자. 그런 선생님이 되자.’
그렇게 생각하자 내가 겪는 아픔이 나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을 이끌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로 여겨졌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교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소박한 꿈은 불편을 견디게 해 주었다. 자취방과 할아버지 집과 친구 집을 떠돌며 생활했지만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꿈은 가출 충동의 늪에서 나를 건져주었다.
“야, 까불지 마! 점수가 적성이고 인생이야.”
십 년 넘게 대학진학지도를 해 온 안 선생이 학생을 타일렀다. 자신이 받은 점수 내용과 어울리지도 않고, 성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대학의 어떤 학과에 지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학생에게 현실을 냉정하게 알려 준 것이다. 안 선생은 대한민국 진학지도 문법에 충실한 것이다.
꿈은 꿈일 뿐이다.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이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희망 없이 어떻게 고통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채 움직이는 차는 위험하다. 꿈이 없는 자의 일상은 지리멸렬하고 불안하다. 꿈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꿈은 꿈꾸는 자를 안내하고 지켜주고 견디게 하고 붙들어 준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려하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그의 꿈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자신의 꿈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어떤 세상을 살아왔으며, 어떤 세상으로 가기를 원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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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일까?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려하는가?
내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내가 나를 이해하기가
왜 이리도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