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더불어 홀로
“야,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마치 시비를 걸 듯 말을 붙여 온 급우가 있었다. 그는 재기 발랄하고 장난기가 많았다. 권위를 내세우려는 선생님들을 은근히 조롱하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재미를 찾는 급우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짝에게도 아무 관심이 없어 말도 잘 붙이지 않은 채 지내고 있었다. 그냥 벽에 걸린 그림 같은 나에게 어느 날 그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같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인간관계를 쉽게 넓히는 것 같았다. 친구의 친구가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봄철 내내 신입생들의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학생들이 이 교실 저 교실로 쏘다니는 바람에 쉬는 시간만 되면 좁은 복도가 시장처럼 떠들썩하였다. 스스로 외톨이로 지내기로 마음먹은 까닭에, 1학년을 통틀어 내가 가깝게 지내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학년 초, 나는 철저하게 ‘홀로’였다. 외로웠을까? 아니다. 그것이 편했다. 자문자답(自問自答)이 몸에 밴 나였다. 그런데 ‘나만의 홀로 세상’에 갑자기 그가 발을 들이민 것이다.
봄 햇살이 쨍쨍하던 한 낮, 학생탑 주변에 서 있던 내게 그가 다가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 <지와 사랑>을 읽어 보았냐?”
“그래.”
“골드문드와 나르치스 중 누가 더 맘에 들어?”
“골드문드.”
“이유는?”
“음, 세상을 살아보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을 알 수 있겠어? 나는 골드문드처럼 온갖 사람을 만나보고, 여자들과 사랑도 해 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살아보고 싶어.”
“나도.”
짧은 시간 동안의 짧은 대화였다. 그가 내 세상으로 훅 들어왔다. 그와의 만남으로 인해 내 인생은 새롭게 조율되었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내가 그의 영향을 받았듯이, 아마 그도 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자유로운 언행은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뒷일이 걱정스럽고 후환이 두려워, 하고 싶은 말도 꾹 참고 삼켜버리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존재였다. 속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나는 그의 당당한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는 왜 내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왜 말을 붙였을까? 왜 오래도록 내 주변을 안 떠났을까? 닮거나 매력적인 점도 별로 없는데.’
그 까닭을 잘 모른다. 아니, 이유를 묻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내게는 그 친구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요소가 없었다. 설령 내가 그 까닭을 물었다고 할지라도, 당연히 그의 대답은 너무 시시하거나 엉뚱한 것이어서 실망할 것 같았다. 나중에는 그걸 묻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것 같아 묻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자 인연의 굵기가 커지고 색깔이 더해졌다. 처음의 작은 만남의 계기는 진주의 핵처럼 감추어져 버렸거나 무의미해졌다.
‘이제 와서 그걸 묻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교실에 향기를 선사하던 중정(中庭)의 라일락도 다 진 초여름 어느 날, 그를 따라 학동 철길 근처에 있던 그의 집으로 놀러 갔다. 맨 처음 검게 번들거리는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학교 음악실이 아닌 가정집에 피아노가 있는 경우는 드문 시절이었다. 뚜껑을 열고 건반 하나를 눌러보았다. 묵직하고 맑고 깊은 음이 길게 울렸다.
‘피아노는 누가 칠까? 부자인가?’
벽에는 레코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저 많은 걸 누가 듣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레코드 한 장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렸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 흘렀다. 느리고 처연한 바이올린 선율이 내 감정 선을 건드렸다. 한 번 더 들었다. 좋았다. 음악 제목을 보았다.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이었다. 그날 이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음악 실기 시험이 있었다. 주어진 곡들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노래를 부르는 시험이었다. 나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가슴에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이 대목에서 나는 그 친구가 내 마음 한쪽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한수가 내 마음을 열고 들어 온 것이다.
**********
나는 늘 ‘더불어’와 ‘홀로’
‘집착’과 ‘내려놓음’ 사이를 오고 간다.
온전히 홀로 있어 본 적도 없고
완전히 내려놓은 적도 없다.
‘홀로’는 ‘더불어’의 독특한 형식이며
‘내려놓음’은 ‘집착’의 유연한 양상이다.
‘관계 맺기’는
‘나’의 존재 양상이자 근거이다.
나는 너와, 나는 그것과
어떤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가?
장차 어떤 관계 맺기를 하려 하는가?
관계 맺기를 통해
나는 나로 설 수 있다.
산다는 것은
이런저런 관계 맺기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