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세상이다

9. 나는 간디가 아니다.

by 걍보리

삼십 대 중반 어느 날, 온종일 몸이 무겁고 불쾌하였다. 특별하게 아픈 곳도 없었다. 누구와 싸운 것도 아니고 언짢은 일도 없었다. 이유 없이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냥 싫었다. 귀찮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정체 모를 어떤 힘이 내 기분을 지배하였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무겁게 짓눌렀던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내가 왜 이렇게 보잘것없게 느껴질까?’

‘정말 나는 못난이인 걸까? 살 가치가 없는 존재일까?’

그런 어두운 느낌의 뿌리에는 열등감이 숨어 있었다. 세상이 내게 심어 준 온갖 기준으로 나와 남을 비교평가하며, 무의식적으로 ‘자기 비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부족하다.’, ‘너는 못났다.’, ‘남처럼 되어라.’, ‘위인이 되어라.’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노예에게 채찍질을 하듯,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곳을 향해 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산 것이다. 남을, 그것도 위인을 닮지 못해 안달을 한 것이다. 위인이 되지 않으면 존재증명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간디처럼 살 필요가 있을까? 내가 간디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설령 내가 그렇게 살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질까? 내가 간디처럼 살 수 없는 것처럼, 간디도 나처럼 살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 나는 간디가 아니고, 간디는 나가 아니다.

‘그래그래, 나는 간디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쓸데없이 지고 있던 무거운 멍에를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깨가 가벼워졌다. 시원하였다.

‘간디건 예수건 부처건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간 것이다.’

그들의 길이 내 길이 될 수 없었다. 사람도 다르고 조건도 다른 것을 어찌할 것인가? 그가 좋아 보이면 그냥 존경하면 그만인 것을. 흉내 낼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될 일이었다.

그럼 언제부터 부질없는 멍에를 지고 살았을까? 교육과정을 통해 세상은 암암리에 내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라고 권유하고 강요했다. 세상은 내게 위인이 되어야만 훌륭한 삶이라고 가르쳤다. 그렇지 않은 삶은 별 볼 일 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에 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나 스스로 그 짐을 지려고 했다. 마치 개미가 황소의 힘을 가진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린애처럼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내게 어울리지도 않았다. 남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자질을 갖추고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 또 특정 시기나 상황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지극히 범속한 내가 어떻게 훌륭한 위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산 것이다.

이런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는 ‘모든 삶은 다 소중하다’는 자각과 확신이 필요했다. 세상의 기대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해서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살 수도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거절에 뒤따르는 위험과 불편을 각오하였다.

‘기꺼이 못난이로 살자. 때로는 남부끄러움을 받아들이자.’

내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뜻밖에 ‘세상 그들’이 내 삶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지만 세상 그들은 이미 나의 무능과 어리석음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나에게 위인이나 특별히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위인? 훌륭한 사람? 웃기고 있네. 까불지 말고, 너나 잘 살아보셔.’

세상은 내가 나 자신 하나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럭저럭 살아내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내려놓을 수 있고, 내세울 것이 있어야 겸손도 무게를 갖는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자랑삼아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았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산 것이다.

게다가 그 ‘누군가’는 애초에 없었다. 그 누군가는 내가 만든 허상이었다. 세상의 비난은 내가 만든 망상이었다. 나는 간디가 아닌, 그냥 나로 살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대로 괜찮아. 그냥 이대로 살자. 그냥.’

나의 부족과 허물을 감추려 하면 열등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을 인정하자 해방감이 들었다. 마음 바꾸기는 이렇게 늘 힘들다. 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자극을 받아 성장하고 싶을 때는, 자기보다 한 걸음 앞선 사람과 비교하면 된다. 그러면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위로가 된다.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의 불편 정도는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이다.

때로는 올려다보고, 때로는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자꾸 내려다만 보면 교만해지기 쉽다. 반대로 올려다만 보면 열등감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교만은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고 열등감은 고통스럽게 만든다.

물론 대비(對比) 없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여자를 보면서, 남자는 자신이 여자가 아닌 남자임을 안다. 나는 ‘나 아닌’ 것과의 대비를 통하여 드러난다. 대비를 통하여 독특성을 도드라지게만 한다면, 그것을 개성으로 살려나가기만 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개 단순 대비에 그치지 않는다. 비교 평가를 한다. 어떤 것은 높게 평가하고, 어떤 것은 천시한다. 세상이 내미는 가치 기준으로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 평가하는 곳 중 대표적인 곳이 학교다. 학교는 사람을 기르기도 하고, 길들이기도 하고, 폭력을 휘둘러 시들게도 한다.

종종 엄마의 뱃속은 모든 욕구가 저절로 충족되는 천국으로, 사회는 좌절과 고통이 가득한 전쟁터로 비유되곤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비유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부분의 유아들이 갖고 있는 자긍심 수준은 비슷하다. 자신이 다른 아이에 비해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느낌을 크게 갖고 있지 않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쟁과 비교 평가는 학교 교육에서 아주 많이 사용하는 ‘위험한 방법’이다.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기준과 목표를 설정해 놓고 등수를 매긴다. 사람가치에 무게를 다는 것이다. 학교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달리기를 비롯한 각종 평가에서 남보다 앞서면 우월감을 느끼고 뒤처지면 열등감에 시달린다. 학령이 높아갈수록 자긍심이 낮은 학생 비율이 늘어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열패감에 시달리는 청소년의 비율은 아주 크게 늘어난다. 수능점수를 가지고 한 줄 세우기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학교교육과정에서 학생 사이의 경쟁 정도가 심하다. 그 원인은 사회문화에 있다. 학교는 일반사회의 축소판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학교문화는 한국 정치사회문화의 축소판이다. 한국 사회문화의 극심한 경쟁 구조와 양극화가 고스란히 한국 학교교육과정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경쟁의 틀은 배우고 가르치는 기쁨을 빼앗는다. 급우를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로 볼 때 어떻게 우정이 자라겠는가?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즐거운 곳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경쟁 때문에 청소년 심리가 피폐해지는 것을 막자고 한다. 학교 교육을 개선하자고 한다. 그러나 적자생존을 심하게 강요하는 사회 문화와 양극화를 개선하지 않은 채 학교 체질을 바꾸기는 어렵다. 제도를 개선하여 삶의 성공 기준을 다양화하고 계층 간에 주어지는 보상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들 때 학교 역시 우정이 넘치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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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배울 줄 안다.

먹고 입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


대개 흉내 내기를 통해 배운다.

가르치기는 배우기의 보조 수단이다.


남들이 웃을 때 나도 웃고

남들이 울 때 나도 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한다.


그들을 닮아 가면서 자란다.

나는 나가 아닌 그들처럼 산다.


나는 남이 된다.


나는 남이다!

참된 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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