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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pr 03.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12. 시간의 색

  여덟 살인 나를 산속 집에 홀로 남겨 두고 이모가 어디론가 외출을 하려고 하였다. 내가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다. 이모가 나를 살살 달랬다. 

  “금방 돌아올 거야. 그냥 혼자 좀 놀고 있어.”

  나는 따라가겠다고 계속 칭얼댔다. 내가 고집을 부릴 때마다 이모가 사용하는 비법이 있었다. 그것은 사카린 물이었다. 이모가 하얀 대접에 찬 물을 채운 뒤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좁쌀 크기의 사카린 한 알을 들고 내게 물었다. 

  “너, 이 단물 먹고 집에 혼자 있을래, 아니면 단물 안 먹고 이모를 따라갈래.”

  만약 이모를 따라가겠다고 하면 사카린 물을 못 마실 판이고, 사카린 물을 먹으면 이모를 따라가면 안 되는 상황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단물도 먹고 또 이모를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모가 나를 따돌리고 혼자서 나들이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달콤한 단물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내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물.”

  이모의 얼굴에는 단번에 웃음이 번졌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고 있던 작은 소금 알갱이만 한 하얀 사카린 한 개를 물속에 떨어뜨렸다.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으로 물을 휘휘 젓자 사카린 알갱이는 금방 녹아 사라졌다. 내가 단물을 한 모금 꼴깍 마시자 이모는 탈출 작전에 성공했다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흥정에서 나는 매번 이모에게 졌다. 이모는 한복을 차려입은 뒤 거울을 한 번 보았다. 하얀 작은 구슬이 점점이 박힌 타원형의 핸드백을 들고 서둘러 산길을 내려갔다.

  이모가 사라진 뒤에 단물을 할짝할짝 조금씩 아껴 마셨지만 오래가지 못하였다. 금방 바닥이 났다. 외조부모님과 엄마는 어디론가 일을 보러 가셨고, 며칠 동안 이모와 나만 남아 있었는데, 이제 이모마저 떠났다. 산속에 나 혼자 남아 있게 되었다. 나는 어른들이 내려간 길을 자주 쳐다보았다. 온종일 길목 바라기로 지냈다.   

  이모는 활달하고 장난기가 많았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큰 소리로 잘 웃었다. 그러다가도 화가 나면 누구에게나 거침없이 불을 뿜었다. 영락없는 싸움닭이었다. 가늘고 여린 목소리가 갑자기 팽팽해지면서 마치 화살이 직진하듯 상대의 가슴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나는 예외였다. 나랑 잘 놀아주었으며 몹시 귀여워하였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 있을까? 해가 지면은 달이 뜨면은 꽃은 외로워 울지 않을까.” 

  이모는 내 눈을 응시하면서, 또 양 볼을 잡아당기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모의 애완견이 되어 눈웃음을 쳤다.   

  당시 갓 스물이 넘은 아가씨였던 이모는 얼굴 가꾸기에 정성을 다하였다. 두 가닥의 실을 가까이 붙이고 팽팽하게 당긴 채 이마와 인중을 문질렀다. 털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인중을 부풀리기 위해 입 안에 공기를 채우거나 혀로 밀었다. 족집게로 눈썹을 뽑고 이마의 털을 밀어 머리나 눈썹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참을성 있게 했다. 아프고 이상해 보이는 일을 굳이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외갓집에서 산 아래쪽으로 이백여 미터를 내려간 지점에 한 가족이 새집을 짓고 이사를 왔다. 그 집은 태평사와 외갓집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그 집주인은 이전에 외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인연을 따라 외할아버지가 사는 집 근처로 이사를 온 것이다. 세 칸짜리 초가집이 새로 들어섰다. 일자형의 집이었다. 마당에서 보면 왼쪽에는 작은방이 있고 가운데에 부엌이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안방이 있었다. 그 집에는 운규 봉규 삼촌을 비롯하여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 산속에 두 집만 사니 서로 가깝게 지냈다. 나중에 운규 삼촌은 이모부가 되었다. 

  그 집 아들들과 외삼촌은 종종 가까운 저수지로 몰려가서 낚시를 하였다. 붕어나 자라를 잡아다가 끓여 먹었다. 자라를 삶으면 누런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자라탕에서는 닭고기 맛이 났다. 사내들은 힘을 합쳐 계곡 근처에 연못을 만들었다. 저수지에서 잡아온 고기들을 거기에 풀어놓았다. 키워서 잡아먹거나 관상용으로 기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계곡물이 줄면 연못물도 줄었다. 그런 탓에 고기들은 잘 살지 못했다. 관리가 소홀해지자 나중에는 계곡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묻혀버렸다. 고생해서 만든 연못이 허사가 된 것이다.

  하루 종일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사내들이 집 아래쪽 텃밭 근처에서 작두펌프 설치공사를 하였다. 먼저 길고 둥근 파이프를 땅속으로 밀어 넣었다. 충분하게 들어간 것 같으면 파이프 위에 펌프를 올린 뒤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을 하였다. 그러면서 마중물을 따라 지하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물이 안 나오면 파이프를 더 깊게 밀어 넣고 다시 펌프질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도 물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지하수 물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파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였다. 모두 초조해하였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을 하면, 그 물은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마중물이 ‘꼬르륵’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피스톤의 밸브 사이로 ‘퍽퍽’ 하면서 공기 새는 소리가 들리면 실망하는 표정들이 또렷하였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일하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빗속에서 지쳐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중물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크륵, 크륵 크르륵’ 소리와 함께 펌프질이 무거워졌다. 밸브사이로 공기 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물이 올라온다는 신호였다. 무쇠로 만든 작두펌프의 ‘끼룩끼룩’ 금속성 소리와 함께 누런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비를 맞으며 일을 하던 사내들과 우산을 들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근육질의 사내들이 돌아가면서 펌프질을 계속했다. 물의 색이 점점 맑아졌다. 흙탕물로 붉게 얼룩진 셔츠 속의 울퉁불퉁한 근육들은 힘차고 든든하였다. 웃어가면서 수다를 떨면서 신나게 펌프질을 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맑은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인네들이 함박을 들고 와서 물을 받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물을 떠다 먹다가 펑펑 쏟아지는 지하수 물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펌프 물을 사용한 뒤로 새로운 도랑이 생겼다. 나중에 물길을 따라 미나리꽝을 만들었다. 

  이모는 운규 총각과 가까워졌는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이모는 등잔 밑에 엎드려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썼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 몰래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이모가 써 준 편지를 운규 삼촌에게 전달하였고, 답신을 다시 이모에게 갖다 주었다. 그 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였다. 

  당시 나는 알만한 것은 다 아는 여덟 살이었다. 제법 믿을만한 사랑의 중개인이었다. 나중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적은 수의 사람만 참여하였던 나주에서의 약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단팥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려 세 개나 먹었다. 1960년대 초중반에는 단팥 아이스크림이 아주 귀했다.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이모부는 기타를 잘 쳤다. 손재주도 좋았다. 최고 기술을 가진 목수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불렀다. 톱과 끌 그리고 대패 등 소수의 공구를 가지고 책상 밥상 의자를 비롯하여 온갖 가구를 척척 만들어냈다. 외갓집을 새로 지을 때도 목공 일은 이모부가 담당하였다. 집에서 쓰는 가구도 이모부가 직접 만들었다. 예쁜 다리를 가진 개다리소반, 둥글고 굵직한 다리를 가진 대형 밥상 등을 사용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이모부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였다.   

  일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먼저 왼쪽 눈은 감고 오른쪽 눈을 가늘게 하여 막대의 길이와 폭을 가늠하였다. 이곳저곳에 가볍게 대패질을 하였다. 대패와 이모부의 손은 마치 한 몸인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대패의 위력에 감탄했었다. 대패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못 만드는 물건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대패질이 끝나면 이모부는 미리 파 놓은 홈에 손질한 막대를 쑥 밀어 넣었다. 거짓말처럼 꼭 맞아 들어갔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한 듯 입을 벌리고 놀란 눈을 하면서 ‘우와’ 소리를 내면, 이모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씽긋 웃었다. 원하는 대로 목공이 잘 마무리되면 이모부는 담배를 꺼내 물고 성냥불을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주 맛있게 피웠다. 하얀 담배 연기가 이모부의 두 콧구멍 사이로 아주 길게 또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보기에 좋았다.

  이모는 이모부의 일터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영암과 광주에서 살다가 나주에 정착하였다. 이모는 메밀국숫집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이모가 이모부에게 이혼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이혼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이모에게는 직업도 없고 아이들을 기를 능력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혼을 강행하였다. 이혼 이전과 이후의 가족들의 삶의 색깔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정이 해체되었다. 이모는 일용부로 때로는 점쟁이로 살았다.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았다. 두 아들과 큰딸을 이 절에 맡겼다가 다시 저 절에 맡겼다. 때로는 다시 데려와 합쳤다. 이런 일이 거듭 반복되었다. 막내딸은 늘 품에 끼고 지냈지만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동고개와 임곡에서는 무허가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 오두막을 철거하려는 공무원들과 늘 싸웠다. 돈이 떨어져 견디기 어려우면 가까운 사람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싸웠다. 사람과 싸우고 세상과 싸웠다. 증오와 가난의 거친 파도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피할 수 있었던 고난을 마치 이모 스스로 불러들인 것처럼 보였다. 이혼 후 오래지 않아 이모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비록 이혼 상태였지만 가족들의 바람막이였던 이모부가 돌아가시자 이모와 자녀들이 져야 할 삶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이모는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하지만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이들은 쑥쑥 자랐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이 모두 독립을 하였다. 비로소 거친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들과 딸들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서 각자의 몫을 거뜬하게 감당했다. 이른바 자식 복이 있었다. 말년에 이모는 고향땅인 영광에서 살았다.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비교적 오래 살았다. 

  이모는 이혼의 원인이 이모부가 아닌 시댁 식구들에게 있다고 늘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가족 사이에 작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점차 커져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모는 시댁 식구들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불량한 시동생이 문제였다.

  모욕에 대한 분노에 공감할 수 있다. 모욕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그럴 때는 중요한 판단을 멈추어야 한다. 이모는 멈추지 못했다. 

  ‘모욕을 이겨낼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설령 그럴지라도 인자하고 성실하였던 이모부와 어린 네 자녀의 장래를 염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혼은 선뜩 동의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혼을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후회하는 마음을 숨기고 산 것은 아닐까?’

  물론 부부 사정은 남이 알기 어렵다고 한다. 이혼초기에는 재결합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모부가 재혼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새 부부 사이에서 아이들까지 태어나자 모든 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이모 특유의 고집과 경직된 사고로 현명한 조정의 기회를 스스로 막지는 않았을까?’

  정말로 그랬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합리화가 위안도 주지만 때로는 덫도 된다. 

  ‘혹시 이모가 그 덫에 걸린 것은 아닐까? 이모의 억센 기질이 발목을 잡지 않았을까?’

  자신의 기질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분에 휘둘리고, 불합리한 선택을 충동적으로 했을 수 있다. 이모에게 있어서 기질은 숙명이었다. 

  크게 자란 나무는 결코 자신의 어두운 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용기 있게 직면할 기회를 놓치거나 회피한다. 외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림자는 더 커지는 법이다. 

  아름다운 아가씨 시절의 이모는 인생이라는 양탄자를 밝은 색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결혼 전반기에는 비교적 밝은 색이 많았다.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중반 이후에는 무겁고 어두운 색이 많아졌다. 끝까지 그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이모의 시간이 만든 양탄자는 색과 모양에서 균형과 조화를 잃었다.   

   

**********     


같은 시간을 살아도

삶의 꼴이 가지가지인 까닭은

서로 다른 색의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 

    

인생은 한 장의 양탄자이기도 하고

한 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양탄자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이야기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희로애락이라는 시간의 실로

자기만의 양탄자를 짜고 이야기를 엮는다. 

    

다양한 시간의 색실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양탄자의 품질도 이야기의 감동도 다르다.    

 

크고 오래 피는 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피는 꽃이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양탄자를 짜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야기를 엮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다.

나는 한 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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