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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Sep 18. 2023

숲길에서

12. 들

  청보리 춤추는 들녘에 서보라. 거기서는 누구나 청보리가 된다. 땅 위로 솟아오른 푸른 보리는 싱싱하게 살아 숨 쉰다. 덜 여물어 보드라운 이삭들을 쓰다듬어 보라. 순한 아기들처럼 품으로 안겨들 것이다. 사랑스럽다. 들이 키운 들의 자식들이다.  

  편하게 드러누운 넓은 들은 자기 품에 들어선 모든 것을 똑같이 대한다. 누렇게 잘 익은 벼들이 푸른 바람에 마른 몸들을 부딪치며 서걱대는 벼논 길을 걸어보라. 벼들이 시시덕거리며 따라 걸을 것이다. 친구가 된다.

  열린 들은 평등하다. 거기에선 높은 자도 없고 낮은 자도 없다. 들에는 동료애와 우정, 안식과 평화가 있다. 들에 가면, 호흡은 길어지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오른 자는 누구나 내려다보게 된다. 종아리에 힘을 주어 앞산에 올라보라. 산을 오른 자는 높은 자리에 서게 된다. 성취의 기쁨을 맛본다. 그 뒤에는 교만이 숨어 있다. 평평한 들에서는 교만이 서지 못한다. 들은 높은 것을 낮게 하고 낮은 것을 높게 한다. 만사를 평평하게 만든다. 나대지 말라고, 설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이른다. 쓸데없이 자신을 내세우지 말라고 차분하게 다독인다.

  오르지 않는 산길은 없다. 산길을 오르다 숨이 가쁘면 잠시 멈추어도 좋다. 때로 정상에 올라 우쭐해진 마음 눈치채거든 발길을 돌려도 좋다. 들에서는 어디나 들이다. 바삐 가도 천천히 가도 그저 들일뿐. 오르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는다. 들길을 걸을 때는 천천히 걸을 일이다. 헉헉대며 걷는 것은 산길을 오를 때다. 

  들에는 메아리가 없다. 목청껏 노래해도 반향이 없다. 들로 가라앉는다. 하늘로 스며든다. 들길을 따라 홀로 걸어보라. 들에서는 자유롭다. 진갈색 벼메뚜기 이리저리 촐싹대는 누런 가을 들녘을 걸어보라. 평안을 얻을 것이다.  

   

  할아버지 논은 넓은 간척지 중간 어디쯤 있었다. 서남쪽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이모작이 가능했다. 초여름이 되면 가을보리를 타작하였다. 보리타작이 끝나면 쟁기로 논을 갈아엎고 써레질을 하였다. 뒤이어 모내기를 하였다. 들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눈 덮인 들은 엄숙하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순백의 들을 보면 마음은 유순해진다. 바람이 불면 ‘우우우’ 하는 소리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왔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간다. 회오리바람이 불면 하얀 눈보라가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사라진다. 들에는 막힌 곳이 없기에 기댈 곳도 없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보라. 순결한 눈을 밟을 때는 미안함과 환희와 경이감을 동시에 느낀다. 눈 덮인 들은 신비롭다.

  겨울이 지나고 해가 길어지면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들에 쌓였던 희끗희끗한 눈마저 녹아 사라진다. 가을에 파종한 보리는 힘겨운 겨울을 보낸다. 맹추위에 서릿발이 서고 땅이 들뜨면 사람들은 보리밟기를 하였다. 뿌리 뽑힌 보리가 찬 기운의 침범으로 얼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보리가 크는 것을 보면 놀랍고 재미있다. 늦가을에 파종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싹이 돋는다. 그런데 그뿐이다.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 서너 달 동안 자라지 않던 보리는 4월이 되면 갑자기 돌변한다. 날마다 자란다. 시시 때때 자란다. 아침에 보고, 저녁때 다시 가서 보면 그 사이에 쑥 자란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발등 높이에서 종아리 높이로, 다시 무릎과 허리께로 단숨에 자란다. 이 시절 보리밭은 생명으로 넘친다. 바람이 불면 초록색 보리는 파도가 되어 이리저리 출렁인다. 풋보리 이삭은 부드럽고 귀엽다. 어린 이삭을 어루만지고 희롱하면서 들길을 걸어보라. 어디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보리밭을 지나다 문득 군것질을 하고 싶으면 풋보리를 구워 먹었다. 마른 들풀을 모아 불을 붙인 뒤 보리이삭을 잘라 구웠다. 먼저 이삭에 달린 보리 까스레기를 불로 태워 제거한다. 익힌 이삭을 손으로 비벼 껍질을 후후 불어낸 다음 알곡을 입안으로 털어 넣어 먹었다. 구운 보리는 쫄깃하다. 먹고 나면 손과 얼굴은 검댕으로 얼룩졌다. 검댕얼굴을 쳐다보고 서로 놀리며 웃었다. 기분이 내키면 보릿대를 뽑아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의 농촌은 바빴다. 밤에는 보리타작을 하고 낮에는 모내기를 하였다. 농부들은 품앗이를 하면서 한철을 버텼다. 어제는 저 논에 모여서 모내기를 하고, 오늘은 이 논에 모여서 모내기를 하였다. 모내기는 농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들일은 고단한 희망이었다. 사람이 바쁘면 들도 바쁘고, 사람이 소란하면 들도 소란하다. 사람들은 농번기와 씨름하였다. 하루빨리 지나기를 고대하였다. 작물은 심어야 할 때가 있고 거두어야 할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농번기는 아이들도 노인도 아이를 낳은 산모도 일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시기다. 농부들이 일에 지쳐 쓰러질 때가 되면 모내기철이 끝났다. 모내기철이 지나면 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러웠다.

  벼는 물을 좋아한다. 들에 비가 내리면 할아버지는 삽을 들고 논으로 갔다. 논고랑을 잘 막아 물을 가두었다. 논 밖으로 새는 일이 없게 하였다. 벼는 할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여름을 지나면서 들에는 비가 오고 장마가 졌다. 태풍이 불면 벼들이 쓰러졌다. 농부들은 쓰러진 벼를 붙들어 세우고 잡초를 뽑으며 가을을 기다렸다. 

  키우기는 힘들지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크다. 보리와 벼는 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다. 평생 농부로 살다 농부로 죽은 나의 큰고모. 자식들의 애원에도 들을 떠나지 않았던 나의 큰고모. 들에 작물을 심고,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크지 않았을까? 작물은 자식 중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가을에 추수철이 되면 농부들은 벼논을 말리기 위해 물고랑을 깊게 파고 물을 뺐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벼는 익어가면서 무거워진 고개를 깊이 숙였다. 우렁이와 미꾸라지도 덩달아 몸집을 불렸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들에 가면 내가 할 일은 길섶에 뛰어다니는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잡으면서 노는 것이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쳐다보면 들은 아득하였다. 하늘과 맞닿은 그 끝은 내 세상이 아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은 편안하다. 일을 마친 사람처럼 한가롭다. 시간이 멈춘다. 지난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까지 모두 꿈이었다고 말한다. 텅 빈 들은 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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