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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Oct 23. 2023

숲길에서

13. 아버지의 왕국

  “나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친구 아버지의 표정은 편하였다. 꾸밈없이 툭 던지는 말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와 만족이 가득하였다. 햇볕에 그을리다 못해 진갈색으로 익어버린 얼굴과 철수세미처럼 거친 손은 그가 8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건실한 농부로 살아왔다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증거이자 훈장이었다. 생전 처음 방문한 친구 부모님의 생활 터전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큰 아버지 댁에 의탁해 살게 되었지. 초등학교 2학년 때, 큰 아버지가 내게 물으시더군. ‘너 일 할래, 학교 다닐래?’ 기가 죽어 있던 나는 공부가 아닌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

  내가 묻지 않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치 옛날이야기 하듯 얘기했다. 그 말에는 ‘나는 못 배우고 못났다.’는 비굴함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도리어 정반대 되는 감정이 잔뜩 들어있었다. 부모 잃은 고아로 자랐고 기초학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지만 열심히 살았고, 지금은 당당하게 일가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좋은 가정환경과 능력과 재화를 갖추고도 어리석게 살거나 주변 사람을 괴롭히며 산 사람들에 대한 숱한 이야기에 비하면 그의 이야기는 마땅히 자랑할 만한 서사였다.

  그는 무밭을 지날 때 몸통이 커 보이는 무를 골랐다. 무를 좌우로 조금 흔든 다음 무 잎을 다잡고 힘을 주어 뽑았다. 고구마 밭에서는 나와 같이 간 아내와 함께 고구마 순을 땄다. 어떻게 순을 따는지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내의 손놀림은 어설펐다. 그 모양을 보면서 그는 하하 웃었다. 작물을 길러본 적도 없고 수확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의 동작이 우스꽝스럽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 작물들 중 좋아 보이는 것들을 골라 박스에 담았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려는 뜻이 엿보였다.

  나는 고구마 밭 비탈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쪽을 향한 밭에는 고구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 생강 가지 고추 배추 대파 등 다양한 작물들이 한가롭게 가을 햇살을 음미하면서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밭은 양지바른 곳이다. 북쪽은 물론이고 동쪽과 서쪽에도 소나무 숲이 훌륭한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어서 겨울에도 쉽게 얼지 않을 땅 같았다. 전망도 환하게 열려 있어 집터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멀리 전개되는 산 능선은 낮고 부드러웠으며 하늘을 온전히 열어 주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의 마음을 순하게 만들 것 같았다. 봄과 가을에는 따뜻하여 일하기 좋고, 여름에는 일하다 너무 더우면 근처 소나무 아래서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으면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은 깊은 산골이었다. 비록 큰 도심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마을 바깥으로 나가거나 시장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좁은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야만 하는 작은 분지(盆地)였다.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작고 좁은 다랑이 논들이 층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은 본디 논농사를 짓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주변산은 야트막한 야산이어서 물 공급이 불가능해 보였다. 마땅하게 저수지를 만들 만큼 너른 공간도 없어서 대부분의 논은 천수답(天水畓)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쌀이 귀하여 밭작물을 심어야 할 땅을 억지로 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꽤 넓은 논을 경영하시는 것 같았는데, 그만큼 고생을 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력이 생길 때마다 근처 논밭과 땅을 샀지. 또 이장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했어. 내가 노력을 해서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수백억짜리 도로가 놓이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지.”

  그 순간 그의 말에는 활력이 있었고 표정은 밝았다.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어머니도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해 주는 사람이지.’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아내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내는 성공한 사람이다. 거짓과 속임수,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삶이라면 많은 재화와 높은 지위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진솔하였고, 표리부동하지 않았고, 인간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허리 굽도록 함께 산 아내의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보기에 좋았다. 

  “사람은 그저 성실하게 살아야 해.”

  성실한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성실함만으로 어떻게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 집에서 100여 미터 아래쪽 도로변에 새로 지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마을회관이었다. 그 건물이 지어진 땅 주인은 아버지였다. 짐작하건대 마을회관 터를 물색할 때 아버지는 기꺼이 그 땅을 내주었던 것 같다. 공동체의 사업에는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공익과 사익이 충동할 때 사익을 양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 기꺼이 공익을 위해 사익을 양보하는 사람을 지도자라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을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궁금하였다. 그는 알고 있을까? 이미 그가 마을의 지도자라는 것을? 아마 그런 생각 자체가 없을 것이다. 그냥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진정한 지도자적 면모를 갖고 있는 것이다. 

  집은 도로변에 있다. 집의 왼쪽으로는 작은 도로가 흘러내리고 오른쪽에는 다랑이 논이 있다. 추수가 끝난 다랑이 논은 제 몫의 일을 끝내고 쉬는 일꾼 같았다. 고구마 밭 옆에는 감나무 몇 그루가 있고, 그 옆에는 어미 백구가 있다. 백구는 지켜야 할 도둑이 없어 빈둥거리며 심심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의 바깥마당에는 새끼 백구가 제 밥그릇을 장난감 삼아 발로 차며 놀고 있고, 두 개의 닭장은 길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다. 아버지가 문득 내 손을 잡더니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닭장으로 이끌었다. 그는 닭장 문을 열었다. 횃대의 망에서 닭이 갓 낳은 따뜻한 달걀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것은 달걀이 아니라 정(情)이었다.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예쁘게 생긴 늙은 노란 호박 한 덩이를 내밀며 기어이 품에 안겨주었다. 방에 두면 보기에 좋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바깥마당에서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그곳은 아버지의 왕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벼와 고구마, 무와 배추는 아버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랄 것이다. 백구와 닭은 할머니의 음성에 신이 날 것이다. 낮은 물론이고 꿈속에서도 먹이를 갖다 주는 어머니의 음성을 기다릴 것이다. 소나무 숲은 튼튼한 성처럼 논과 밭을 에워싸고 있으며, 집은 경작지 가운데 있다. 집터는 좌청룡 우백호의 능선을 거느린 명당 터였다. 그곳의 밤하늘에서는 은하수가 은하수답게 흐르고 달이 달답게 빛날 것 같았다. 

  자녀들은 언제든지 돌아와 쉴 수 있는 아버지 왕국이 건실하게 버티고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고개를 넘어 외지로 나갔을 것이다. 세파에 시달려 힘들어지면 돌아와 쉬고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 왕국은 성실과 신뢰와 애정으로 구축한 나라이다. 그런 미덕이 없다면 고구마 밭과 벼논과 소나무 숲이 무슨 힘을 갖겠는가?

  10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친구 부모님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날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왕국으로 초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 마음의 왕국에 아버지를 초대하였다. 아버지가 나를 초대했을 때는 동시에 나 역시 아버지를 내 마음세상으로 초대한 셈이다. 내가 아버지 나라의 손님이었듯이 아버지 역시 내 나라의 손님이었다. 진솔하고 인간미 있는 나이 든 왕이 내 마음세상을 찾아온 것에 감사하였다.  

  때가 되어 죽음을 바라보면, 자신이 사는 세상 주인은 곧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내가 없는 내 세상은 없기 때문이다. 선사 임제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이라고 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자신의 왕국의 주인임을 깨달으면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친구 아버지는 성실성과 배려의 정신으로 건립한 나라에서, 농부로서 자신이 일군 땅에서, 그 나라의 왕으로 살다가, 때가 되면 저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아쉬움 없이. 

  지금 나는 어떤 나라를 건립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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