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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31. 나의 보로메 섬

by 걍보리

토요일 아침. 10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좁은 간격을 간신히 유지한 채 꿈틀댄다. 이동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까 조바심을 내며 서두르지만 시내를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한다. 비좁은 장소에 차곡차곡 쟁여져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탓이다. 거리의 차들은 서울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왜 떠나는 걸까?

놀랍게도 일요일 오후에는 떠났던 차들이 다시 돌아온다. 일상은 힘이 세다. 떠났던 사람들이 항복한 것이다. 사람도 차도 도시의 틈새 틈새로 다시 구겨 넣어진다. 왜 다시 돌아오는 걸까? 떠나는 까닭은 기분이 말해 주고, 돌아오는 이유는 이성이 설명해 준다.

차가운 직육면체 건물, 작은 성냥갑 모양의 사무실, 식물을 보기 어려워 부자연스러운 지하상가,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동네의 가게들, 훈련병처럼 줄을 선 빌라와 아파트, 그늘진 좁은 골목,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 요란한 광고 전광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 사람 사람. 가슴이 조여든다.

웅웅 거리는 자동차 소음과 회색빛으로 뒤덮인 인공적(人工的)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늘 바다 산 나무가 풍성한 곳에서 가슴을 펴고 싶다. 청정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맑은 햇살 속을 걷고 싶다. 이왕이면 시심(詩心)이 우러나올 만한 멋진 곳에서. 내 이웃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프랑스 작가)는 이탈리아 북부 마지오레 호수에 떠있는 보로메 섬들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마지오레 호수 언저리의 자갈밭과 난간을 따라 산책하며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가까운 곳에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지혜로운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통찰에 이르렀다.

“여행을 해서 무얼 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돈키호테가 상상하던 가상의 공주)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 섬들이 될 것 같다. …… 마른 돌담 하나만으로도,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 그루의 사이프러스 나무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다. …… 이런 것들이 바로 - 이토록 가까운, 이토록 잔혹하게 가까운 - 나의 보로메 섬들일 터이다.(장 그르니에의 수필 「섬」 중에서)”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낯선 문화를 체험하고 대자연의 장관(壯觀)을 보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풍광이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휘파람을 불면서 그 자리에 오래오래 머물지 않는다. 투명한 햇살 가득한 청산도에 갔다가 시끄럽고 먼지 많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곳도 그리운 시절도 기억마저 희미한 풋사랑처럼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답답한 도시에서도 숨을 쉬며 살 수 있었던 까닭은 주변에서 종종 만나는 숨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익숙한 나무, 사람들이 가꾼 꽃, 비록 건물의 직선으로 잘린 모습이 아쉽지만 허리를 펴면 볼 수 있는 상큼한 파란 하늘, 그 위를 흐르는 구름은 죄인 가슴을 펴주었다. 운이 좋으면 어느 순간 일출의 장엄함과 일몰의 비장함을 가까이서 피고 지는 작은 꽃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마저 없었다면 여린 내 마음은 마른걸레처럼 말라붙고 너덜너덜해졌으리라.

소문난 관광지를 찾아 헤매고, 멋진 풍광을 사진에 담으며, 맛있는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런 행위에는 마치 딱지를 주워 모으는 데 마음을 빼앗긴 어린애와 같은 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여전히 행복의 파랑새를 집 밖에서 찾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떤 감동의 가능성 열 수 있다는 것을 또 열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엾게도 잡아둘 수 없는 먼 곳에서 보로메 섬들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눈을 넓히는 순간, 이미 나는 나의 보로메 섬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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