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인생의 의미
“요즘 어떻게 지내?”
“사는 게 재미없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意味)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
의미는 현상이나 사물의 가치(價値)를 뜻한다. 어떤 것이 가치가 있고 없고는 마음이 규정한다. 의미(意味)는 의식미(意識味)의 줄임이다. 의(意)는 표층의 마음이고 식(識)은 심층의 마음이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마음은 의(意)다. 분석 이전에 삶 전체가 실린 체감(體感)은 식(識)이다. 의(意)가 이성과 관련된다면, 식(識)은 감성과 관련된다. 의(意)보다 식(識)이 더 근원적인 마음이다. 일상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느끼거나 말할 때는 이성 외에 감성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이 작용한다. 종종 ‘이유 없이 끌린다.’거나 ‘그냥 싫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무의식적인 힘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삶의 의미(意味)는 마음이 느끼는 맛이다. 살 맛도 죽을 맛도 모두 마음 현상이다. 사는 것이 재미없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못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살 맛이 없어진 것이다. 인간관계가 틀어졌을 때, 병들었을 때, 원하던 바를 얻지 못했을 때 재미가 없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도 않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으면 절망에 빠진다. ‘삶이 무의미(無意味)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한 욕구(欲求)가 있다. 욕구가 겨냥하는 것이 의미다. 배가 고프면 밥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이때 밥을 먹으면 살 맛이 난다. 못 먹으면 살 맛이 안 난다. 병이 들면 회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병이 나으면 살 맛이 난다. 잘 낫지 않으면 살 맛이 안 난다. 욕구가 겨냥하던 것을 얻으면 의미가 있지만 못 얻으면 의미를 잃는다. 한 번 의미를 잃으면 거기서 끝인가?
사는 동안 욕구는 멈추지 않는다. 원하던 것을 얻고 나면 상황도 변한다. 상황이 변하면 욕구도 달라진다.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기 전(前)의 욕구와 합격한 후(後)의 욕구는 다르다.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얻는 순간, 거기에서 삶이 끝나는가? 아니다. 마음은 새로운 목표를 쫓아간다.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면 삶이 끝나는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의미를 성취한 뒤에도, 의미를 성취하지 못한 뒤에도, 주어진 조건을 바탕 삼아 새로운 의미를 지향한다.
우리는 텅 빔 속에서 살지 않는다. 무(無)에서 유(有)로 나아가지 않는다. 늘 어떤 상황(有)에서 출발한다. 이미 나는 어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실존(實存)하고 있다. 주변 사람 자연 사물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것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어떤 것에는 낮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런저런 관계를 맺으면서 산다.
과일을 담았던 상자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쓰레기로 여긴다. 어떤 사람은 돈으로 여긴다. 전자(前者)는 ‘상자는 쓰레기다.’고 규정하는 사람이다. 후자(後者)는 ‘상자는 돈이다.’고 규정하는 사람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본질(本質)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 ‘무엇 무엇에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다.’고 규정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의미는 각자가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의미는 본질이다.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의미 즉 본질이 규정된다. 본질은 실존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은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실존은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가도 규정한다. 실존은 자유로운 자이고 선택하는 자이고 책임지는 자이다. 김춘수의 시 꽃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의미 추구의 출발점도 자기 자신이고, 의미의 최종 도착점도 자기 자신이다. 살아 있는 한 욕구가 있고, 욕구가 있는 한 의미 부여는 끊이지 않는다. 생존, 안전, 관계와 사랑, 봉사와 명예, 심미의식, 자아실현, 무아의 경지 등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영역들이다. 어느 영역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살아 있는 한 무의미는 없다. 살 맛이 안 난다는 것은, 단 맛이 아니어서, 쓰거나 떫은맛이어서, 재미도 없고 괴롭다는 뜻이다. 그러나 쓴 맛도 떫은맛도 맛은 맛이다. 쓰고 떫은 그 맛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권태와 허무, 심신의 고통과 외로움은 무의미가 아니다. 단지 피하고 싶은 맛일 뿐이다. 그 맛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욕구와 나는 분리할 수 없다. 욕구가 나고, 나가 욕구다. 자신의 욕구를 모르면 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돌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자기의 궁극적인 의미는 자기 자신이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 나의 본질이고 내 인생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