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꼰대
꼰대는 본래 청소년들이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은어다.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역(逆)꼰대도 있다. 역꼰대는 기성세대를 폄하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젊은 세대를 의미한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일부 MZ세대를 지칭하는데, 그들은 선배나 상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어느 경우건 꼰대는 듣기 싫은 말을 무한정 쏟아내는 잔소리꾼이어서 조롱과 기피의 대상이다.
나는 꼰대다. 적게 듣고 많이 말한다. 귀는 작고 입은 큰데, 커도 훨씬 더 크다. 칠십 밑자리까지 남을 가르치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산 탓이다. 게다가 직업상 익힌 지식나부랭이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어서 잔소리꾼이 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품도 경망스럽고 진중하지 않아 수양이 더 필요하다.
실제로 내가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시효가 지난 것이다. 낡고 쓸데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조건만 갖춰지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저절로 쏟아져 나오고 만다. 가진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내뱉는 말에도 관성이 있는 것일까? 한 번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가 팔을 잡아당기고 말에 엇박자를 놓아 브레이크를 걸기 전에는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의 흐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낫을 들면 베고 싶고, 도끼를 들면 찍고 싶은 법이다. 생각이 넘치면 말로 쏟아내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기 힘들다.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제어가 잘 안 된다. 총과 대포 같은 지식도 그 효용성이 낮은 시대에 낫과 도끼 같은 지식을 대단한 것인 양 폭포처럼 쏟아내면 얼마나 우스운가? 그대로 꼰대로 낙인이 찍히고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만다.
25년 1월 말 설날에 처가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여러 조카들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금언(金言)을 되새기면서 밥을 먹고 덕담도 나누었다. 뒤이어 과일을 먹고 차를 마셨다. 조카며느리가 세 살이 된 딸아이에게 한복을 입히고 세배를 시켰다. 아이가 재롱을 떨자 웃음꽃이 피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득 요즘 젊은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알고 싶었다. 아, 그때 참았어야 했다. 그런 것에 호기심을 갖거나 궁금증을 토로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지 못했다. 실수였다. 어느 순간 모두 입을 닫고 있는 잠깐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조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회사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네.”
조카들이 물음에 답을 할 때, 그냥 듣고 고개만 끄덕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들이 의견을 내고, 나도 내 견해를 내놓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떤 지점에 이르자 그들의 말에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조리 있게(아주 꼰대스러운)’ 설명하고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젊은 친구들의 말을 많이 들으려던 당초의 뜻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내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거실은 갑자기 강의실이 되어버렸다. 눈치 없는 나는 나중에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정황을 알게 되었다.
배는 부르고 나른하고 피곤하기도 한데, 갑작스러운 잔소리에 귀와 머리를 아팠을 것이다. 젊은 조카들 엉덩이에 좀이 쑤셨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네 가족들이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네 집으로 귀가하였다. 그들을 밖에서 배웅하고 돌아오자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내게 핀잔을 주었다.
“아니, 젊은 얘들 말을 들어야지, 왜 자기가 설교를 하고 난리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비로소 내가 꼰대질을 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늦었다. 조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아는 게 많아서 그런 거라고 장모님이 변호를 해 주었다. 더 부끄러웠다. 화끈거리는 얼굴로 차를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꼰대가 되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말의 관성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닫힌 입마저 꽉 묶어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그래. 단순하게 입을 닫는 데서 그치지 말자. 대신에 젊은 친구들 앞에서는 아예 입이 없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