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던 표현/단어 - I know

by BestPart

"I know." '나도 알아.'



의도를 모르고 들으면 상황에 따라 괜스레 차갑거나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랑 대화할 때 '나도 알아'라는 말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처음 미드 번역을 시작했을 때 등장인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뱉는 I know에 괜스레 당황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몇 번 있다. 지금도 작업할 때 이 말을 직역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친구한테 팩폭을 당한 주인공이 sheepish한 눈빛으로 내뱉는 I know 정도가 아니고서야. 사실 과반수의 경우 '나도 알아'를 그대로 넣으면 오역이 발생한다.



미드 등장인물들은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라는 말에도 종종 I know라고 대답한다. 혹시 성격이 파탄난 등장인물인가요, 하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여기서 I know는 '그러게'라는 공감의 표현이다. It really has나 True 등 대체할 표현은 얼마든지 많이 있는데도 왜 굳이 어감도 별로인 I know를 쓰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말에 악의는 없다는 거. 이 케이스의 I know에 적응하기까지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미드 등장인물들은 위로를 전할 때도 I know를 자주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알아'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네 마음 알아,' 혹은 '이해해'등으로 조금 순화해서 넣어 주면 좋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내가 영한번역을 제대로 시작힌 지 얼마 안 됐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I know는 다음과 같은 케이스였다. 아래는 실제 드라마 대사는 아닌 단순 예시.



아빠: 요새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렵잖아.



딸: 그렇죠.



아빠: 그래서 엄마 유품 중에 돈 되는 걸 팔기로 했어.



딸:(역정) 지금 장난해요?



아빠:(버럭) I know!



이 I know를 번역하느라 10분을 넘게 고민한 기억이 난다. 경험이 부족했던 당시의 나에겐 그제껏 봤던 것 중 가장 황당한 타이밍의 I know였다. 저걸 '나도 알아'라고 직역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버럭 화를 내면서 내뱉은 말이니 '네 마음 알아' 같은 표현을 써도 굉장히 이상해진다. 한참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 이때 내뱉은 I know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속상한 거 나도 알아. 근데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번역을 하다 느낀 건데, 원문이라는 건 텍스트뿐 아니라 인물의 감정, 표정, 목소리 톤까지를 전부 포함한다. 여기에서는 '딸의 감정에 대한 이해 + 달리 방법이 없다는 자기변호'가 모두 담겨야 대화 흐름이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해당 부분 최종 번역은 '나도 이러기 싫어!'로 넣었고, 감수도 무사 통과. 지금까지도 이 번역은 비슷한 케이스에서 종종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혹시 다른 방법이 또 있다면 댓글로 알려 주셔용.



대충 생각나는 I know의 케이스는 이 정도.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번역하고 넘어가지만 한 줄 한 줄 조심스러워야 했던 옛날엔 만날 때마다 괜히 조금씩 거슬리곤 했던 표현이다. 역시 번역하기 제일 어려운 말은 학술지에만 실리는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이렇게 매번 뜻이 달라지고 뉘앙스에 신경써야만 하는 표현들인 듯하다. 다른 번역가들에게도 그런 표현이 몇 개쯤은 있을 텐데 뭐가 있을까. 물어보고 싶어도 어디 물어볼 데가 없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도 이런 표현들이 생각나면 종종 올려보도록 합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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